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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6. 2023

말하지 못한 감정, 문장으로 풀어내고 싶지만

그런 날이 있다. 생각은 머리에서 맴도는데, 한 문장도 써지지 않는 날.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뭘 써보지만 영 신통치 않다.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어떤 마음은 문장으로 정리되거나 표현할 수조차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떠오른 생각이나 나를 물들인 감상을 어떻게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뭔가 빠진 듯 아쉬움만 남긴 채 넘어갈 때가 많다.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작가들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적잖은 고민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겠지만, 그들의 글을 읽으면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거구나’ 하며 그들의 치열함에 감탄하곤 한다.


특히 누군가의 마음을 잘 묘사한 문장을 읽을 때면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소설보다 함축적인 문장으로 표현되는 시는 의미를 곱씹기 위해 읽다가 멈춘 적도 여러 번이다.  




며칠 전 읽었던 이사라 시인의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에 수록된 <다시 눈길을 주다>라는 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 주변도 돌아보고 살아야 할 이유를 나는 이 시에서 찾았다.



봄꽃이 진다

한 시절 살다 지는 그 자리에 눈길을 주면

나와 마주한 적 있던 그 꽃

상대를 가진 사람처럼 따뜻하다


우리는 입술에 내려앉은 뭉클한 세월을 지나며

서로 등이 붙은 듯

자신의 앞을 보고 살지만


그래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진 꽃들이 있어

너무나 충분했던 봄 시간들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쓴 것인지 아니면 상상 또는 세밀한 관찰의 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한 사색이 없이는 도저히 저런 문장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작가나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뭔가를 썼는데 문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매끄럽지 못하고 자꾸 끊어지는 느낌, 주어와 술어가 불일치하거나 마지못해 선택한 단어가 생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 같을 때, 많이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뭔가를 쓰는 이유는, 쓰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글이라고 해도, 뭔가를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도 작지 않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뭔가를 건져 올린 느낌이랄까.


행복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이런 소소한 성취가 쌓여서 이루어지는 형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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