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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0. 2023

더디 가는 계절 ㅡ 모호하고 불분명한 일상

날씨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벌써 9월 중순을 훌쩍 넘었는데도 한낮에는 여전히 덥다. 밤에도 이맘때 느낄 수 있는 선선함과는 거리가 먼 뭔가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상기후 탓? 9월인데도 반팔 차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날씨. 가을이 사라진 걸까? 꿀벌이 사라졌듯이. 아직 오지도 않았으니 사라졌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표현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시기가 있다. 나서야 할 때가 있으면 물러서야 할 때가 있고 머물러야 할 때가 있으면 떠나야 할 때도 있다. 계절이 더디 가는 것을 보면서, 이게 계절 탓인지 아니면 우리 탓인지? 아무래도 자연을 함부로 대한 인간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간 특유의 이기심과 무분별함으로 모든 것을 흐릿하고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요즘 내 생활도 그렇다. 꽉 짜인 일상을 살았던 예전과 비교해서 특별히 달라진 게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같지 않다. 경계선이 흐릿해졌다고 할까. 하루를 시작할 때는 마치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 같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어제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나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뭔가 나사가 헐거워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계절을 탓할 수 없었다.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딱히 피곤한 일은 없는데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다 자칫 냉소적이고 무심해질 것 같다. 경계할 것은 언제나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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