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늦은 밤, 오랜만에 삼청동과 북촌 일대를 걸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물러간 거리는 비교적 한적했다. 낮 동안 도로를 달궜던 더운 기운은 여전했다. 조깅을 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눈에 띄었고 간간이 오가는 차량들도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평소 사람들과 차량으로 붐비던 이 거리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그 낯섦 속에서 지난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웠다. 길 옆에 있는 건물 위로, 홀로 서 있는 조형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를 향해서 가려고 하지만, 갈 수 없이 붙박이로 고정된 그래서 더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은 지나갔다고.
'~다고. ~다고. ~다고...' 어느덧 이런 문장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듣고 있던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방이 시끄러웠다면 오히려 음악에 집중했을 텐데. 저런 말을 속으로 곱씹는다고, 기억이 남긴 아픔과 안타까움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마 그건 내가 지상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삶이 그저 막막하게 느껴질 때, 혼자 남겨진 듯 쓸쓸해질 때,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을까?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견디고 살아냈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도 때로 필요하다. 살아갈 힘을 얻는 건 그런 돌아봄이다. 지난 시간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떤 아픔은 지금도 생생하다. 둔감해질지언정 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읽었던 황인숙 시인의 <이 시간 밖으로까지만이라도 나를 데려가다오>가 떠올랐다. 밤은 깊어가는데, 발걸음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내 발은 걸음을 잊었다.
여기를 떠날 수 없다.
여기서 너를 잃었기에.
내 눈은 쉼 없이 헤매고
내 발은 걸음을 잊었다.
(…)
더 이상 시간은 숨을 쉬지 않는다.
어떤 우연이 내 손에
네 손을 쥐어주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