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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3. 2023

빵과 모나카를 꿈꾸는 것이 하찮은 일인가

머리로는 뭔가 이상적인 것을 꿈꾸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니, 머리를 따르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우리가 욕망에 굴복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몸과 머리를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인간의 정신을 다 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최소한도까지 규명하려는 서구의 과학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보는 것같이 여겼던 동양 사상 또한 따지고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할 뿐.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왜 자꾸 좌절되고 무너지는가. 우리의 생각을 받아줄 만큼 현실이 따르지 않는 건, 그만큼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복잡하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능력이나 여건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뭔가를 하려고 계획해서 그런 것이거나.


한편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자각 없이 추구하는 이상은 공허하고 빗나가기 마련이다. 헛된 믿음 또한 현실의 검증을 받고 불순물이 걸러져야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금각사에 불을 놓기 전에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한다.  



"빵과 나의 관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행위에 당면한 정신이 아무리 긴장과 집중에 분발하건 말건, 고독하게 홀로 남은 내 위장은 여전히 그 고독의 보증을 요구하리라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나의 내장은 볼품없는, 그러나 결코 순종하지 않는 나의 개처럼 여겨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이 아무리 잠에서 깨어 있어도, 위나 장처럼 둔감한 장기는 제멋대로 미지근한 일상성을 꿈꾸리라는 것을.


나는 내 위장이 꿈꾸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빵과 모나카를 꿈꾸리라는 것을. 내 정신이 보석을 꿈꾸는 사이에도 그것이 완고하게 빵과 모나카를 꿈꾸리라는 것을....." (금각사 348 - 349p)



뭔가를 하고 싶지만 육신이 발목을 잡는다면? 육체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까. 그게 가능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주인공은 금각사에 방화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범행 동기를 은폐하기 위해 빵과 과자를 산다. 빵으로 자신의 범죄가 마치 배고파서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인간적이라는 동정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이라도 착수하려는 완전히 고독한 행위와 보잘것없는 빵의 관계...'였다고.


확신범에게 그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육체적인 곤궁은 정신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문제는 그 정신이 이상하게 꼬여 있었다는 점이다. 금각의 아름다움이 자신을 억압한다는 착각 속에서 그에게 다른 모든 것은 하찮아졌고 더 이상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정신이 육체를 끌고 가기도 하지만, 육체가 정신을 이끌기도 한다. 뭐가 우선이라고 할 수 없다. 뭐든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치우치는 법이다.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해한 것 같은데, 뭔가 다 이해하지 못한 소설을 읽고 나니 홀가분하다기보다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불완전함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했던 나의 어리석은 탓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문장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해서 어떤 사유와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았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무래도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책도 읽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그의 전작주의자가 되었듯이. 그러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지만.


"미가 금각 그 자체인지 아니면 미는 금각에 에워싼 이 허무의 밤과 동질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미는 그 모두이리라. 세부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며 금각이기도 하고 금각을 에워싼 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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