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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02. 2023

그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사랑이었다

미시마 유키오 ㅡ 가면의 고백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저 좋다는 말로는 사랑을 설명하기 어렵다.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해도 이에 관한 명료한 정의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으면서 이에 대한 해답 비슷한 것을 얻었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의 누나를 보고 그가 한 생각이다.


'스물네 살의 이 아름다운 여자는 나를 간단히 어린아이로 취급했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을 보는 사이에 나는 내게 여자들이 매료될만한 특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오미(그가 숭배했던 동기생이다)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고, 또 반대로 오미가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사실은 오미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다고 나를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과 희망, 그게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지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그와 나를 동일시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한다. 그 말인즉, 같이 살면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화제를 공유하다 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서로를 닮아간다는 뜻일 게다. 하물며 일부러 누군가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그의 언행, 생각 등 그와 관련된 것들을 따라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함께 있는 순간이 너무 좋으면 그냥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한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 주인공의 친구 구사노의 여동생인 소노코가 주인공에게 느꼈던 감정 역시 비슷했다.


때는 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의 공세로 일본이 패망 직전까지 간 시기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미군의 공습으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 주인공과 소노코 사이에 나눈 대화의 일부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ㅡ 하고 나는 말을 꺼냈다. "우리도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알 수 없어. 만약 지금 경보가 울린다면 그 비행기에는 우리를 맞힐 직격탄이 실렸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스카치 트위드 줄무늬 스커트의 주름을 괜스레 접고 또 접다가 그렇게 입을 열며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햇살을 받은 솜털이 뺨의 선을 둥그렇게 그려냈다. "뭐랄까.... 소리를 내지 않은 비행기가 와서, 이러고 있을 때 직격탄을 떨어뜨려준다면.... 그런 생각 안 해요?"


이것은 그 말을 하는 소노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덜컥 발소리를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다.


꼭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마음에 품었던 염원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면 순간이 영원이 되고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게 된다.


물론 소설에선 소노코와 주인공이 이어지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게 그들의 사랑을 더 돋보이게 한 건 왜일까. 사랑 역시 우리의 삶을 닮았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 한 줄 평: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적인 소설, 관념적인 미학이 돋보인다. 이 정도로 치열하게 자신을 분석하고 탐구한 소설을 근래에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다른 모든 소설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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