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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7. 2021

언제나 똑같은 하늘

레마르크/ 개선문


토요일인데,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저번에 일이 있어 주말 알람을 평일처럼 해 놓고 다시 바꾸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한 번 잠에서 깨고 나니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새벽부터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원래 저렇게 새벽부터 울어댔나, 그동안 주의 깊게 듣지 않아서 못 들었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 변함없는 생활.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지기 쉽다. 거기에다 덥기까지 하니. 매미들은 여름 한철 짝을 짓기 위해서 저렇게 울어대면서 치열하게 짧은 생을 산다. 문득 매미보다 내가 낫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아침부터 여간 개운치 않다. 무심하게 보낸 많은 시간들, 감동을 잃어버린 삶까지 더해져.





마르크의 <개선문>에는 주인공이 스위스로 추방당한 후 파리로 돌아오면서 느낀 단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의지할 곳 없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인 숙명적인 태연함으로 받아들였다. 하늘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똑같은 하늘이었다. 하늘은 살인과 증오, 희생과 사랑 위에 펼쳐져 있었다. 나무들은 무심하게 해마다 새로운 꽃을 피웠다. (...)"






태연함, 그것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태연함이라니. 처음 읽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현상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감동도, 분노도 없다. 한편으로 그렇게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드니까, 이해는 가지만 과연 나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역시 지울 수 없었다.


과연 하늘이 똑같을까.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다른지 하늘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작가가 말하는 똑같다는 의미는 한결같다는 뜻이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자연마저 인간처럼 혼란스럽고 변덕이 심하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자연도 요즘은 변화무쌍하다. 코로나19 사태에, 산불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폭염과 홍수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에게 잔뜩 화가 난 것 같다. 우리 잘못이니 탓할 수도 없다.






물론 태연함은 때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삶의 다양한 현상,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눈 감는 무관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태연함이 숙명적이 된다는 건 한편으론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아마 레마르크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자연과 닮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극이 일상화되면, 그 자극조차 자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그게 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방편이기도 하고.





다시 시작된 주말, 여름 한복판에 있다. 매미 소리를 들으니 오늘도 무척 더울 것 같다. 그럼에도 태연함이라고 하긴 그렇고 조용하게 보내고 싶다. 늘 그렇듯, 잘 될지 모르겠다. 마음이 태연하고 고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말처럼, 고요한 마음을 갖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요한 마음이란 낙담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명랑한 것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추운 날에 따뜻한 집 안에서 보는 눈 내린 경치 같은 것임을 이제는 안다. 평소와 다른 빛의 각도에 세계가 고루 아름답고 밝게 보인다. 햇살은 없어도 모든 것이 차분한 밝음 속에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_ 彼女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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