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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15. 2021

잭 케루악 그리고 스미레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언젠가 은퇴하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그동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이렇게 글을 쓸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굳이 생존의 현실에 매여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겠지, 하면서.


산중에서 도를 닦다가 속세로 내려와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세상 속에서 살다가 해야 할 일이 끝나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가 최근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했다.





"뮤와 처음 만났을 때, 스미레는 잭 케루악의 소설 이야기를 했다. 항상 웃옷 주머니에 <On the Road, 길 위에서>나 <론섬 트래블러>를 꽂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곳에 연필로 표시를 하고 반가운 경문이라도 본 듯 외웠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론섬 트래블러> 안에 있는 산불 감시원 이야기였다. 높은 산꼭대기의 고립된 오두막에서 케루악은 산불 감시원으로 외톨이가 되어 3개월을 보냈다. 스미레는 그중에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사람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황야로 들어가 건강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지루하기까지 한 고독과 절망을 경험해야 한다. 자신이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에 스스로의 진실한, 숨겨져 있는 힘을 깨달아야 한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매일 산꼭대기에 서서 360도 주위를 휘익 둘러보고 어느 산에서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은 그것뿐. 그다음에는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거야. 밤이 되면 커다란 털북숭이 곰이 오두막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한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인생이야."


어떻게 하면 케루악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지나칠 정도로 와일드하고 쿨해질 수 있을까, 하고 스미레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론섬 트래블러>는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이 이야기는 소설을 통해 처음 접했다. 잭 케루악은 콜럼비아 대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소위 비트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졌고,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을 여러 책으로 펴냈다.

아무튼 스미레의 생각에 지금은 공감하고 있다. 스미레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직업인으로 생의 중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아마 내가 스미레처럼 그 시절로 돌아가 대학생이었다고 해도 저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장을 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그런 미래에 대한 계획만 세우고 있었을 , 삶을 관조하고  순간을 누리고자 했던  케루악이나 스미레와 같은 생각은 사치스러운 사람들의 배부른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건 취향이나 가치관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시험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잭 케루악과 같은 길을 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아니고, 나와 같이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탄한 길을 갔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사고로 규정하는 것에 지금은 거부감을 갖고 있다. 경제력으로 규정하는 것도 역시.


아마 잭 케루악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읽었던 <길 위에서>에 나오는 이 글처럼


"나는 길에 익숙해진 순진한 눈으로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끝없이 으르렁대는 뉴욕의 절대적 광기와 환상적 혼잡함을, 그 미친 꿈을 보았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주변이 조용하다. 모두 피곤해서 쉬고 있는지도. 아마 월요일까지 연휴니 좀 더 느긋해졌는지도 모르고. 아마 산불 감시원이었던 케루악도 그랬을 거다. 짧게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테니까.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모든 혼란과 헛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에게 유일하게 고귀한 행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즉, 움직이는 것. 우리는 움직였다."


<잭 케루악 _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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