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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06. 2023

이 순간은 덧없지만 불멸의 추억으로 남을지도

서머싯 몸 ㅡ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추석 연휴가 한바탕 꿈처럼 지나갔다. 어제는 출근하는 것도 힘들었다. 쉰다고 딱히 뭘 할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대로 며칠 더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관성(惯性), 물건에만 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관성이 있다. 오히려 관성의 힘은 사람에게 더 잘 나타난다. 다름 아닌 습관이다. 생활리듬이 쉬는 것에 맞춰지면 그게 습관이 되고 여간해선 다시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동력을 갖기 어렵다. 일과 휴식 사이에서 적적한 균형이 필요한 이유이다.




추석에 읽었던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인간의 굴레에서'의 작가로 유명한 그의 필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단편들을 읽어보니 스토리텔러로서 그의 능력은 역시 탁월했다. 이 소설에는 석양으로 물든 아름다운 태평양 해변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등장인물의 대화가 나온다.


“아름답군. 아름다움을 직접 대면할 기회는 좀처럼 없지. 잘 봐 두시게. 지금 보는 걸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까. 이 순간은 덧없는 것이지만 자네의 가슴속에 불멸의 추억으로 남을 걸세. 자네는 영원과 조우한 거야.”


영원과 조우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니 감탄스러웠다. 모든 순간이 덧없지만, 언젠가 지금 이 순간도 내 가슴속에 불멸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아니, 남기를 나도 바랬으니까. 비록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일상의 삶에 불과하더라도 지나고 나면 그 무의미한 일상마저도 아름답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 일상에 의미와 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겠지만.


이번 추석 명절도 나중에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나처럼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무료하고 특별한 이벤트 없이 지나간 연휴였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산호초로 유명한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에 있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그곳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꼭 물건만이 아니다. 장소도 그렇다.


아름다운 장면이나 장소도 모두 순간이다. 덧없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작가의 말처럼 가슴속에 혹시 불멸의 추억으로 남을 여지가 나한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을 사는 내가 영원과 조우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불멸인 것을.

<장욱진, 나무 위의 아이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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