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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07. 2023

책을 읽지 못한 날 ㅡ 기분이 영 별로였지만

지지난 주 토요일은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나한테는 매우 드문 날이다. 주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책을 읽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루 종일 찜찜했다.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책을 읽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건 피상적인 이유일뿐, 내 안에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왜 기분이 별로인지, 불편한지 알지 못했다. 그냥 여느 토요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말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이 별로였는지 고민했다. 최근에 쓴 글을 읽어보니 얼핏 단서가 보이긴 했다. 불편한 감정이 글 속에 미묘한 뉘앙스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분!! 사실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기분은 노력하면 곧 바뀌기도 한다. 기분이 별로일 때 가장 좋은 수단은 잊는 것이다. 잊기 위해선 뭔가에 집중해야 하고, 애쓰는 만큼 기분이 나아지는 건 분명하다.


그 방법으로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수단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지 못했으니 기분을 전환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밤에 시간이 있어도 책이 선뜻 손에 가지 않았다. 책상에 앉았지만 자꾸 딴생각이 났다.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책은 읽기 싫고, 뭐 그런 날이었다.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죽기 전에 나도 뭔가를 꼭 쓰고 싶다고. 누군가 읽을만한 그런 글을. 그러나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뭘 알아야 쓸 것이 아닌가. 설사 쓰고 싶은 소재가 있다고 해도 글로 표현할 재주가 나에겐 없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나의 내면을 글로 표현할 만한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난 시절, 부지런히 책을 읽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아마 이 후회가 내면에 깊게 자리 잡아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집에도 책이 꽤 많은 편이다. 놓아둘 공간이 부족해 인사로 옮겨 다니면서 갖고 있던 책을 후배 검사들에게 나눠줬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편이다. 책은 한 번 읽는다고 다 알 수 없다. 여러 번 읽어야 작가의 의도나 이면에 숨겨진 뜻과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다.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결국 책을 읽지 못해서 불편하고, 읽어도 다 알지 못해 불편한 것이 요즘 내 심정이다. 거기에 더해 삶에 대한 무심함까지 더해졌으니, 의욕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내가 느끼는 이 무심함은 결국 책을 읽지 않아서 생겼을 거라고 짐작한다. 책으로부터 자극을 받았다면, 나에 대해 무엇보다 세상에 대해 이렇게 무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기분은 전적으로 내 탓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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