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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18. 2023

깊이 배려해 주는 것 그게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자동차를 몰고 긴 여행을 한다고 해요. 조를 짜서 때때로 운전을 교대하면서. 그런 경우에 당신은 상대로서 어떤 타입을 선택할까요. 운전은 잘하지만 배려심이 없는 사람과 운전은 잘못하지만 배려심이 깊은 사람 중에서.


섹스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능숙하다든가, 서투르다든가, 재주가 있다든가 없다든가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깊이 배려해 준다... 그게 가장 중요하죠. 마음을 안정시키고 여러 가지 상황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글이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당연히 후자였을 것 같다고? 글쎄? 운전은 좀 서툴지만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말은 쉽지만 현실에선 그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말로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지만, 배려심은 좀 부족해도 능수능란하게 상황을 돌파하는 사람 전자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뭔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배려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모호하고 주관적인 개념이 아니던가. 인간은 여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가치를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하면 당연히 그 사람을 배려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서툴거나 재주가 없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한에서는 말이다. 좋을 때는 당연히 상대를 배려할 테니 배려하고 주의 깊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때는 정작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때이다.


오랜 기간 함께 산 부부나 가족들을 보면 내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다지 배려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하고, 굳이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함께 살면서 쌓인 감정의 골이 깊다면 그건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젊을 때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사랑할 의지가 없고. 모든 것이 시답잖게 느껴지는 그런 상황에 이른다면, 오히려 나를 배려해 달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먼저 요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젊어서나 나이가 들어서나 서로에게 주파수를 맞추기를 어려운 AM 라디오 같은 존재들이다. 하물며 남녀 간에 '성(섹스)'도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하지만 좋게 생각하고 싶다. 하루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니까. 이상적이고 어려운 선택이지만 그래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꼭 남녀 간의 사랑을 떠나서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그들의 말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야 하는 성숙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Riccardo Guasco ㅡ L’apostrofo verd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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