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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25. 2023

내가 누구를 바꿀 수 있는가?

<서머싯 몸 ㅡ 비>

누구나 자신의 신앙과 믿음, 지키고 있는 신념, 정치적인 견해 등이 옳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신념이나 믿음이 내 선에서 머물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바꾸려고 하거나, 그 과정에서 내 신념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왠지 세상이 너무 부조리해서 나라도 나서서 바른 방향으로 가게 해야 할 것 같은 확신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인정하지 않는데? 내가 맞고 네가 믿는 것은 틀린 거야.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해관계와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갈라져서 끊임없이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는 것도 다 자기 소견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비>가 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계몽적인 선교사인 데이비슨 부부가 태평양에 있는 섬으로 선교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들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신앙을 고수한다. 더 나아가 신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에게 징계를 가할 정도로 극단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이다.


부부는 몇 날 며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선교지로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발칙한 한 아가씨를 만난다. 그 여인은 아무 남성과 어울리는 소위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여인, 당연히 그들의 눈 밖에 나게 되고 데이비슨 목사는 그녀를 교화하는 것을 넘어 태평스러운 이곳에서 추방하기로 마음먹고 물밑 작업을 펼친다.


사람의 본성은 악해 끊임없이 계몽되어야 한다고 믿는 선교사, 매일 밤 유흥과 파티를 즐기는 여인 사이의 갈등이 점점 깊어진다.


압박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녀는 결국 목사의 사주를 받은 총독의 지시로 샌프란시스코로 추방하기로 결정되고, 이를 안 그녀는 목사에게 읍소한다. 자신이 변하겠다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표면적으로 보면 목사의 승리. 그러나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럴 수도 있겠구나, 나도 그 입장이 되면 내가 믿는 신앙과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그들처럼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나와 언행이 다른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목사는 그녀와 둘이 있는 시간이 길었는지 오히려 유혹에 빠지고 만다. 결국 죄의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정죄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칭 의인인 체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위선적인 인간의 말로였다.


"아니, 의사 양반, 당신도 나랑 한 번 하든가. 아님 내 방에서 뭐 하시게?" 그녀의 표정에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할 멸시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참 같잖고 가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 사내들! 이 추잡하고 더러운 돼지들! 당신들 모두 똑같아, 당신들 모두. 돼지들! 돼지들!"


맥패일 박사는 그 말을 알아듣고 말문이 막혔다.




과연 무엇이 바른 신앙인가. 나 자신도 바로 서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훈육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만의 신념이나 믿음이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생각이 고루해지는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지극히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타락한 것 같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 나에겐 책임이 없을까? 과연 그럴까?


그러나 내가 살았던 지난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과 달랐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선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과연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만큼 그들 자신을 돌아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이 소설을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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