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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0. 2023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친하지 않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람과 통화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공통된 화제를 찾기도 어려워 이런저런 주제로 화제를 옮겨가다가 그가 사는 동네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가 사는 곳에 가본 적이 없어 그곳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카페 이야기였다. 그가 사는 동네에 카페가 많다는 말을 듣고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만 소도시에 카페가 많다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워 그렇게 카페가 많은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반문했다. 그러자 상대는 기분이 나빴는지, 바로 퉁명스러운 말투로 바뀌었다.


친한 사이였다면 뭐 그런 일로 예민하게 그러느냐고 충분히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 문제는 아직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렵게 오간 대화에서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일단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선해하면 내가 사는 동네를 우습게 여기느냐, 결국 그건 나를 우습게 여기는 거 아니냐는 뜻일 수도 있겠다 싶어 빨리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고 장황한 설명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상대가 그런 반응을 보인 시기!! 더군다나 나쁜 뜻으로 한 말도 아닌데, 그것도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려고 어렵게 찾은 화제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한 건데 그런 날 선 반응을 보이다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대화의 주제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와 자세로 말을 해야 하는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예민한 문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그렇게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딱히 할 말이 없게 된다. 편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더더욱 어려울 테고.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처음이라서 그랬구나, 어쩌면 진짜 모습이 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 아는 사이에도 오랜만에 연락하면 서먹서먹하고 대화의 화제를 찾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잘 모르는 사이에선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도 상대가 별 뜻 없이 한 말에 흥분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한 적이 없었는지 돌아보았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에 나오는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도, 그 상처를 초월할 수 없는 것도 겐조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그래 기분이 별로일 땐 겐조처럼 자자. 잠이 모든 것을 치유해줄 지도 모르니까.


"이윽고 겐조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복잡한 두뇌를 조용한 밤의 지배에 내맡겼다. 밤은 머릿속의 혼탁함을 정화시키기에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그러나 소란스러운 두뇌의 활동을 멈추기에는 충분히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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