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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6. 2023

그럼에도 가을은 가을

깊어가는 가을, 이상 기온 탓인지 걷다 보면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더위가 느껴졌다. 11월 8일이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인데도 계절이 자신의 때와 시기를 잊어버린 것 같다. 달과 날씨가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었다. 계절이 계절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을은 가을다워야 한다. 인간인 우리가 인간답게 살지 못하니 자연도 우리를 닮아가는 것인지, 우리가 익히 아는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변하고 있다.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하는 현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을은 가을,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길을 걷다가 단풍이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맘때가 되면 푸른 잎이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떨어지는 자연 현상은 알면서 내 인생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아니, 왜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언제나 시선이 문제였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니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면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려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실체와 실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또한 말하지 않았던가. 한 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뀔 거라고.


잎이 단풍이 되어 떨어진다는 것, 가을이면 늘 경험하는 쓸쓸함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 때가 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쓸쓸해지는 만큼 마음이 선해지는 것은, 무언가 채워져 있던 것이 비어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밖으로 향했던 시선이 이제 내면으로 침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을 끝내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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