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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4. 2023

간소하고 심플하게 바뀌었으면

가을이 한창인 10월의 어느 주말, 학교 선배와 예전 직장 상사로부터 자녀 결혼식이 있으니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미뤄두었던 결혼을 이제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결혼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한편 부음 소식과 달리 결혼 소식을 자주 접하니 그만큼 나이가 든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결혼식 초청을 받았다고 해도, 친한 후배 검사나 친척을 제외하고, 축하 인사와 축의금만 전달하고 거의 가지 않는 편이다. 신랑이나 신부 부모에게 '나 왔다'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고, 정작 결혼식의 주인공인 그들의 자녀를 알지 못하는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받고 우리 결혼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다고 모두 초청할 것이 아니라(그런 결혼식은 간다고 해도 막상 앉을 자리가 별로 없다) 가족이나 친한 친척, 신랑신부 친구들로 참석자를 제한하는 가벼운 결혼식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소위 '스몰 웨딩'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여기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결혼식 자체도 좀 간소해졌으면 좋겠다. 미국 영화처럼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나 마음이 통하면 바로 성당에 가서 신부 앞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까지는 좀 그렇지만, 우리나라 결혼식은 지나칠 정도로 허례허식이 심한 편이다.


유명한 호텔에서 하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고, 값비싼 음식에 호화판 신혼여행 등 결혼식을 하는 과정에서 돈과 노력이 너무나 많이 드는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신랑신부는 방전되어 정작 서로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어쩌면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화판으로 시끌벅적하게 결혼식을 올린다고 잘 사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허례로 가득한 결혼식으로 분쟁이 생기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축의금만 해도 그렇다. 지나치게 거품이 껴있다. 자기도 이미 했으니 그만큼 받으려는 생각, 소위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런지 청첩장에 계좌번호까지 친절하게? 적어서 보낸다. 무슨 장사치도 아니고.


부조 문화는 지금보다 어려웠던 시절 상부상조의 의미가 지금까지 남은 것인데, 지금도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씁쓸해진다. 보여주기식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체면 때문인지 참 피곤하다.


신성해야 할 결혼이 서로의 조건을 따지거나 보여주기식 문화로 오염된 현실을 지켜보면서, 결혼식이 거품을 빼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혼 문화가 건전하고 심플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긴 어디 결혼식만 그렇겠는가.


삶 자체에 낀 거품과 허례허식을 바꾸지 않으면 삶의 주체인 내가 객체로 바뀌어 삶에 끌려가게 된다. 당연한 결과로 피곤하고 지치게 된다. 물론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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