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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8. 2023

세월이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고

사무실이 있는 삼성동 코엑스 근처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테헤란로의 특성상 기업들, 특히 IT기업이 밀집되어 있고 대형 쇼핑몰이나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는 코엑스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요즘은 외국인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도 보이지만 이 거리의 주류는 아닙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 젊은 사람들은 밝고 활력이 넘치는 반면 나이 든 사람들은 뭔가 침체되어 있고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세월이 준 훈장일까요? 세월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겼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 시절엔 활기차고 밝았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행인들을 보면서 '나도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어떻게 살아야 잘 늙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세월의 무상함과 허망함을 깨닫습니다. 삶의 비루함까지도요.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을까? 저를 포함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는 시절은 잠시인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젊어서는 세월을 무시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세월을 너무 의식합니다. 앙리 에스티엔은 <말하다>라는 책에서 '젊음은 알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나이는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젊은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탄식하지 않을 겁니다. 아직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나이를 의식하게 될 때는 이미 늦습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뭐든지 할 것 같지만 그들도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요. 물론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겠지만요.




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곳을 지나갈 겁니다. 사람들은 오고 가고, 마치 흐르는 물처럼 모두 흘러갑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활성산소가 우리 몸을 산화시키는 것처럼, 시간은 우리를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보는 것, 무엇보다 그 한계 속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딱히 얻는 것도 없다는 것, 그게 슬픕니다. 그런데도 저를 비롯한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은 먼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물론 그게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늙음과 죽음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운명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애써 외면할 뿐입니다.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것, 그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밀도와 깊이가 다를 겁니다. 제가 얻은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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