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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3. 2023

속고 속이면서 드러나는 진실

다나자키 준이치로 ㅡ 만卍

<세설>의 작가로 유명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만卍> 1920년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치고는 내용이 가히 혁명적이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시절에 동성애가 등장하고 남녀 간의 치정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읽기에 따라서는 불편한 소재를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것이다.


평생 여성과 성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썼던 그였기에 이 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여자 없이는 내 시도 예술도 없다. 하얀 것, 여자, 그것은 내 육신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내 생활, 내 사상, 내 이념, 내 모든 것의 모체다."


내용은 통속적이어서 피상적으로 읽으면 부담스러워 그만 읽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명될 정도로 일본 문학계가 인정하는 탐미 문학의 거물, 그렇다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을까. 그는 재미로 돈이나 벌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일까. 남녀 관계, 성문제만큼 흥미를 끄는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굴복하는 인간 자체의 한계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욕망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정상적인 생각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어려워진다.




속고 속이는 관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우리의 실상이 아니던가. 소설에서는 남녀 또는 여성 간의 성이 문제가 되었지만 성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꾸면 지금 우리 세태를 보는 것처럼 소설은 읽힌다. 인간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인지, 에고이즘과 욕망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키는지 소설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 얼마나 음흉하고 간사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 마치 나의 실상이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이면에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니자키 준이치로 또한 소설만큼이나 사생활이 복잡했기에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연애, 결혼 그리고 성문제를 솔직히 묘사할 정도로 그는 시대를 앞서간, 인간의 감정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탐미주의 문학의 거봉인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천재라는 말을 예술적 완성도만을 기준 삼아 결코 자기 자질을 오판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팔십 평생을 통해 자기 자질을 거의 오판하지 않았던 다니자키야말로 천재라 해야 할 것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이 낳은 천재 문학가였지만, 오직 문학이라는 외길만을 걸었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한길만을 그리고 특정 주제에 대해 집착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통속적인 소설이 다른 게 보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마치 인간 특히 여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묘사 그리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장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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