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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03. 2023

기다려주는 거야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오열 ㅡ 신호등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곡을 들었다. 얼마 전에 발매된 레마가 만들고 오열이 부른 <신호등>이라는 곡이다. 심플하면서도 잔잔한 오열의 목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가사. 박소이 시인의 동시집 <입안에 악어가 살아요>에 수록된 <신호등>이라는 시에 곡을 입혔다.


오열은 음악교사 출신으로 싱어게인2 무명가수전에 참가하면서 알려진 뮤지션이다. 세상 일로 다치고 각박해진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 주는 것으로 음악만 한 것이 없다. 가사가 시여서 무척 훈훈하다.


사람들 가슴에도

신호등을 달 수 있다면

마음이

기쁜지

슬픈지

한눈에 알 수 있어


빨간불이 켜지면

물러나

천천히

기다려 주는 거야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신호등 하니 떠오르는 영화 장면이 있다.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영화 <50/50>에서 주인공 애덤은 조깅을 하다가 신호등에 걸린다. 그 순간 빨간불이 들어왔는데도 뒤에서 달리던 어떤 여인이 신호를 무시한 채 쏜살같이 앞질러 가지만 애덤은 끝까지 신호를 지킨다.


신호도 잘 지키고 술, 담배도 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그가 희귀암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암 투병 중에 여자친구는 떠나고... 인생의 씁쓸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물론 결론은 해피엔딩이지만.


애덤처럼 걷다 보면 신호등에 걸릴 때가 있다. 나도 내 앞에서 초록불이 노란 불로 바뀌더니 빨간불이 되고 마는 경험을 종종 하곤 했다. 이때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잠시 멈추어야 한다.    


빨간 신호등이 들어온 건널목,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장애물이 내 인생에도 있었다고. 항상 직진만 할 수는 없다고. 때로 고난과 어려움이라는 인생의 빨간 신호등이 켜질 때는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다 보면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이 곧 올 거라고.


잠시 기다리면 되는데도 그 시간을 힘들어했다. 그 기다림이 무용하다는 생각에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 용케 신호를 잘 받아 멀찍이 앞서가는 사람들과 정지신호 앞에 걸려 멈춰 선 나 사이에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질 것만 같은, 그래서 제시간에 목적지에 가지 못할 것 같은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제자리 뛰기라도 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신호가 바뀌기 전에는 건널 수 없는데도.


문득 이 곡을 듣고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켜졌던 신호등은 내 삶에 꼭 필요한 경고이자 지시등이었음을. 잠시 멈춰서 쉬어감으로써 다시 힘차게 걸어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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