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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23. 2023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친 적은 없는지

원래 인연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았고 그 말 자체를 믿지 않았다. 전생에 어떤 연이 있어야 이생에서 맺어진다느니,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날 수밖에 없다느니, 헤어질 운명이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느니 그런 유의 말이 선뜻 와닿지 않았다.  


마치 내가 좌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내 운명이나 사람과의 만남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의지의 문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설사 그런 힘이 있고 그 힘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그때 가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평소 너무 의식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여전히 인연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의지라는 것도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연이 다한 사람을 보면서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운명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한편 시간이 흘러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관계도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굳이 관계를 이어갈 필요를 못 느껴서 그럴 수도 있다.


가끔 휴대폰에서 연락처를 찾다가 한동안 연락이 뜸한 사람을 발견하면 잘 살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궁금하면 내가 먼저 연락하면 되지만 여러 이유로 그것도 잘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는 관계가 있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말주변이 부족하거나 설득할 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말로 설득할 관계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혹시 내가 어리석거나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인연이었음에도 몰라보거나 놓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피천득 선생의 이 말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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