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시련이 닥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이는 반응은 좌절이나 절망이다. 낭패감을 느끼기도 하고. 일단 힘이 드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도 힘들면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현실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평소 신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 상황에선 애꿎은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잘 수습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도 순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수습할 시간만 낭비하곤 했다.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다.
발상을 전환해서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고난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다. 괜히 어려움이 찾아온 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나는 고난을 인생의 쓴 약으로 기꺼이 마셔야 한다고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고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피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고난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라는 거다.
"거센 바람을 맞아 줄기가 휘어진 대나무, 바람은 시련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 시련은 대나무가 대나무다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로 서는 법을 배우니까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곧을 수 있어요." 미술사가인 이주은 건국대 교수의 조언이다.
대나무가 쉽게 죽지 않는 이유는 바람이 하루에 300번씩 흔들어 주기 때문이다. 300번의 바람이 불 때마다 뿌리들이 서로 끌어안기 때문에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곧은 대나무의 특성이 실은 바람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나무 숲은 전투적 이념의 절정이며 은둔의 맨 뒷전인 것이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 버린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자전거 여행, '지옥 속의 낙원' 중에서>
우리도 다르지 않다. 시련은 피할 수 없지만 잘 이겨내고 견디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나갈지 아니면 바람에 부러져 쓰러지고 말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지난날, 나는 여러 번 쓰러졌다. 그나마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과연 나는 비바람을 이겨낸 대나무처럼 속사람이 단단해졌을까.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