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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04. 2024

두꺼워지는 삶이 아닌 단단해지는 삶을 위해서

삶에 시련이 닥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이는 반응은 좌절이나 절망이다. 낭패감을 느끼기도 하고. 일단 힘이 드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도 힘들면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현실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평소 신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 상황에선 애꿎은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잘 수습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도 순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수습할 시간만 낭비하곤 했다.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다.


발상을 전환해서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고난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다. 괜히 어려움이 찾아온 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나는 고난을 인생의 쓴 약으로 기꺼이 마셔야 한다고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고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피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피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고난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라는 거다.  




"거센 바람을 맞아 줄기가 휘어진 대나무, 바람은 시련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 시련은 대나무가 대나무다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로 서는 법을 배우니까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곧을 수 있어요." 미술사가인 이주은 건국대 교수의 조언이다.


대나무가 쉽게 죽지 않는 이유는 바람이 하루에 300번씩 흔들어 주기 때문이다. 300번의 바람이 불 때마다 뿌리들이 서로 끌어안기 때문에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곧은 대나무의 특성이 실은 바람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나무 숲은 전투적 이념의 절정이며 은둔의 맨 뒷전인 것이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 버린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자전거 여행, '지옥 속의 낙원' 중에서>


우리도 다르지 않다. 시련은 피할 수 없지만 잘 이겨내고 견디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나갈지 아니면 바람에 부러져 쓰러지고 말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지난날, 나는 여러 번 쓰러졌다. 그나마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과연 나는 비바람을 이겨낸 대나무처럼 속사람이 단단해졌을까.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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