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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19. 2024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후의 예항 ㅡ 미시마 유키오>

지난 연말에 읽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오후의 예항>, <짐승들의 유희> 가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연말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답을 정확히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어떤 내용이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이다. 미학적인 순문학(純文學)을 추구했던 미시마 유키오가 논쟁적인 인물이고, 우리나라에선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꿈과 현실의 대립(오후의 예항)', '요즘 보기 드문 순수한 사랑(짐승들의 유희)'에 대해 쓴 미시마 유키오의 이 소설을 요약해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추구했던 정신과 이상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랐지만, 미욱한 탓으로 그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오후의 예항>이라는 소설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은 소년 노보루, 항구에 정박한 배에 견학을 갔다가 알게 된 뱃사람 류지, 그런 류지의 삶을 동경하는 노보루. 그러나 류지는 노보루의 기대와 달리 미망인인 노보루의 어머니 후사코와 같이 살기 위해 육지에 정착한다. 이상과 꿈을 실현하지 못하게 된 노보루의 다음 행동은 파괴적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류지가 처음 후사코를 만나 나누는 이 대화 내용이다.


"내가 남몰래 마음속으로 목숨 바치는 사랑이나 몸을 불태우는 사랑 같은, 그런 관념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은 분명 바다 때문입니다. 철선에 갇혀 있는 우리가 보는 주위의 바다는 여자와 너무 많이 닮았어요. 바다의 잔잔함, 바다의 폭풍, 그 변덕, 석양을 품은 바다의 아름다운 가슴은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러나 배는 바다를 가르고 나아가면서 끊임없이 바다에 거부당하고, 바다는 무한한 물이면서도 목마름을 달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지요. 이렇게까지 여자를 생각나게 하는 자연의 모든 요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히려 여자의 실체에서 항상 멀리 떨어져 있고. ..... 그게 원인인 겁니다."




류지는 바다를 여인으로 비유해서 자신이 혼자 사는 처지를 설명했지만, 나는 그 바다가 내가 쫓았던 꿈이라고 생각했다. 곧 닿을 듯하면서도 점점 멀어져 가는, 그럼에도 다시 그 꿈을 좇아 살았지만 여전히 나를 거부했던 지난 시절에 품었던 꿈 말이다.


바다에서 삶을 영위하던 류지가 후사코를 만나 바다를 버렸으니 노보루 역시 류지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노보루는 꿈을 버린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류지가 자신의 꿈을 짓밟았다고 생각했다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동기로 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상을 버리고 현실의 안녕을 택한 류지, 과연 지금의 나와 류지는 무엇이 다른가. 내가 류지이고 류지가 나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적 능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쓴 소설, 그래서 그의 탐미적인 문학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징과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언뜻 읽어서는 무슨 의도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읽지 않으면 다시 읽기 어려울 것 같아 참고 읽었다. 공교롭게도 다 읽은 시점이 2023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2023년이 지나간 것처럼 꿈도 사라졌다. 파도가 거센 비바람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의 꿈 또한 지나간 한해의 시간만큼 더 멀어진 것이다. 꿈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요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꿈의 실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으니… 꿈을 이루지 못한 것보다 이제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나를 보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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