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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8. 2024

어쩌면 인생이란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일지도

"인생이란 어쩌면 그렇게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일까요?

(...)

아니, 그런 건 써야 할 것이 아니었네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금수>에서 헤어진 前 남편이 前 배우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는 고백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에게 인생이란 슬픔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 세월은 흘러도 사랑하는 사람이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사람은 이제 내 곁에 없으니 그 순간 슬프다는 표현조차 진부해지고 만다.


원치 않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운명.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해도 그런 운명이라면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혹시 우리의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면?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어떤 답도 찾을 수 없다.


10년 만에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잠깐 안부를 묻고 각자 가던 길로 가야만 했을 때 두 사람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여전히 쌓여 있지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을지도. 그 순간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가 누구 때문이었는지 묻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서로를 지키지 못하고 헤어진 사실이 중요할 뿐.  


상심의 순간들 그리고 주고받은 많은 편지들.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다.


그 대신 서로에 대한 회한과 상대의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 그 결과로 남은 상심(傷心)이 편지 곳곳에 담겼다. 사랑하는 이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니. 차라리 생과 사로 갈렸다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정리했을 텐데. 정리의 순간엔 운명이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무력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어찌 그들만 그렇겠는가?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들이 그렇고, 소설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그렇고, 우리 또한 다를 바 없는데.  


지난 주말 내내 하늘이 흐렸다. 저 하늘 위에 태양이 있다고 믿기 어려운 날씨였다. 하늘이 흐린 이유가 인간이 배출한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해도, 당장은 하늘 탓만 하고 말았다. 저들도 그랬을지 모른다. 하늘이 흐린 것마저도 우리의 운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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