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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31. 2021

나의뉴욕제과점

김연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어느 날인가 나는 문득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는 괴로운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늘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 안에 간직한 불빛들을 하나둘 꺼내보는 일이 잦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탕을 넣어둔 유리항아리 뚜껑을 자꾸만 열어보는 아이처럼 나는 빤히 보이는 그 불빛들이 그리워 자꾸만 과거 속으로 내달았다.


추억 속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그 불빛들의 중심에는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김연수 _ 뉴욕제과점>






김연수 작가의 소설 <뉴욕제과점> 그는 실제로 경북 김천에 있었던 뉴욕제과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뉴욕제과점에 얽힌 추억을 글로 남겼다.


작가에게 유년시절 삶의 일부분이었던 뉴욕제과점이 그의 삶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뉴욕제과점이 있다. 그건 건물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자신이 속했던 조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제는 사라진 그래서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불빛이라는 거다.





이 글을 읽고 '나의 뉴욕제과점'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렇게 길게 인용한 것은, 작가의 글에서 뉴욕제과점만 내가 간직하고 있는 불빛으로 대체하면 바로 그대로 내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작가와 달리 나는 '나의 뉴욕제과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히 안타깝다는 사실이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일 수도. 아니면 지금도 '그 시절의' 뉴욕제과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뉴욕제과점이 내 현실에서 완전히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슴에 간직하고 말아야 한다고 마음먹고는 있지만.


아침에는 흐리더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해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위안이라면 그 햇빛일 것이다. 그것도 역시 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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