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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0. 2021

<이방인> 뫼르소의 사랑

알베르 카뮈/이방인


"사랑을 해봤니? 사랑이 뭔지 알기라도 하니?"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게 사랑이었나, 하는 생각까진 미처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이방인>에서 사랑과 관련된 독특한 상황을 묘사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주인공 뫼르소는 추모기간 중인데도 여자 친구 마리와 관계를 갖는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 부분을 읽고 처음에는 뭐 이런 남자가 있나 싶었다. 관계까지 가졌으면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를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는 그가 솔직함을 넘어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랑이 뭐길래, 그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렇다고 그에게 마리 외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더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흘러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규정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부인했던 거지, 마리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자신의 감정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일반화시키기를 거부했던 것임을.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아니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모든 규칙과 언어를 그는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랑은 '하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을 말하는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뫼르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사랑이란, 둘만의 특별한 감정이다. 그 감정은 오직 둘만이 공유하는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라는 말이다. 둘 사이를 떠나서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말하기 어렵다. 그 둘도 사랑할 당시엔 서로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는 사적인 감정을 일반화된 '사랑'이라는 단어로 단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무의미하다고 말한 거다.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면 아쉽고, 다시 보고 싶고, 하루의 대부분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내고, 나의 모든 면 특히 단점까지도 오픈할 정도로 그 사람을 믿는 것. 그게 사랑이라면 그 역시 마리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다.


태풍의 한가운데는 오히려 고요하다고 한다. 태풍이 왔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폭풍우가 이는 바닷속이 고요한 것처럼.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뫼르소는 인간들이 규정한 사랑에 대해 부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리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한 것이다.


아마 뫼르소도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을 때 마리를 생각하며 자신이 인간의 언어로 규정된 사랑을 했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한 감정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고, 헤어진 후 많은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사랑은 상대의 부재를 통해,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확인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랑은 부재를 통해 증명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뭘 하는지 궁금해한다. 만나는 것보다 이런 순간들이 나를 그녀에게 더 붙잡아 두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깊어지는 건 오히려 이런 순간들이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서로에게 서툴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연인이라면...(상대에게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 상대마저도) 그렇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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