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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03. 2024

책 때문이 아닌데도

삼일절이 낀 연휴, 주말에 하루가 더해졌을 뿐인데 연휴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평일엔 주말이 오면 빈둥대며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을 먹지만 딱히 취미가 없어서 그런지 막상 주말이 되면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들어하곤 했다.


지난 연휴가 그랬다. 읽고 있는 책마저 책장이 더디게 넘어갔다. 아, 책을 잘못 골랐구나! 뒤늦게 탄식을 해보지만, 사실 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뭘 해도 지치는 것, 의욕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소위 번아웃(burnout)되었다고 할까.


처음에는 읽고 있는 책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무 지루하고 어렵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책을 잘못 골랐다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이 희생양을 찾듯, 나 역시 뭔가 다른 곳에서 이 상황에 대한 원인을 찾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문제는 책이 아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있었다.


책을 덮었다. 아무래도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관념과 의식의 흐름을 서술한 책이 아닌 스토리 위주의 책이 필요했다. 마침 적당한 책이 있어 읽어보니 술술 읽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렇게라도 책 읽는 재미를 찾자'는 마음이었고 실제로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뿐, 이번에는 굳이 왜 이 책을 읽었지?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이 책 저 책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어려운 책은 읽기 어렵다고, 쉬운 책은 너무 쉬워서 뭔가 남는 게 없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했다. 나 자신이 흐트러져 있는 한, 무엇을 하더라고 시간을 제대로 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의욕이 상실되었든, 번아웃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든, 흐트러진 나를 바로 세우는 길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할 힘을 잃어버리면 하루, 매시간이 무척 지루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는 것도 버거울 수밖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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