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퇴근 후에 산책을 하면서 간간이 달리기도 한다. 물론 예전처럼 오래 달리지는 못한다. 뛰고 나면 숨은 차지만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등 유명한 소설가들이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엔 달리기나 수영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몸으로 움직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누구나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피할 길이 없으니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관리할지만 남은 셈이다. 집중하되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게 지난 시절 내 삶으로 체득한 결론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달리기와 존재하기, Running & Being>는 미국의 심장병전문의이자 작가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이 쓴 책이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주기적으로 우울할 때, 나는 삶이란 하나의 경기라는 것, 하지만 사람이 제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오직 신만이 그 결과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기의 내용이 아니라 달리는 사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늘 그렇듯 적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 든다면 그건 매 순간 실패할 위험을 안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됐다면 결승점까지 걸어서 들어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다."
"어떤 마라톤이든 결승점에 들어가는 때만큼은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달려오는 내내 러너는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힘든 일도 아주 많았지만 결국 이겨냈다. 그런 해방의 순간이 있을 수 없다. 그 시련이 끝날 때쯤이면 달리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기를 해서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달리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이 중요한 것이다.
때로 엉망진창이고 우왕좌왕할 때도 있지만 삶이라는 경주를 자기만의 보폭과 속도로 끝까지 완주하는 것, 비록 실패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달리기의 목적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목적일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