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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19. 2024

뜻밖의 통화

얼마 전의 일이다. 먼 친척에게 법률상담을 해준 적이 있었다. 법조인이다 보니 흔히 겪는 일이다. 그의 부모는 알지만 그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전해 들은 바로는 무척 곤란스러운 상황으로 보였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조언을 해주고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그 일을 잘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고.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주말이니 뭐 그럴 수도. 한참이 지나도 콜백이 오지 않아 전화를 다시 했다. 여러 번의 신호음 끝에 연결된 통화, 별말이 없었다. 순간 당황스러워 '나를 모르나?' 누구라고 밝히자 건조한 목소리로 "말씀하세요... "라는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뭐지. 말씀하라고?' 


말을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인데 나에게 말하라니,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나이로나 촌수로나 내가 연장자이고, 굳이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나름 도움을 주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전화 한 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긴 이르지만 나한테 하는 행동으로 봐서 평소의 그의 태도가 짐작이 되었다. 


산책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나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누군가의 전화를 건성으로 받지는 않았는지를.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했는지를.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을 것 같았다. 더는 그를 탓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오래 가질 수 없었던 것은 그를 통해 지난 시절의 나를 돌아봤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나도 비슷한 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과 함께 봄날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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