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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11. 2024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는

걷다 보니 얼마 전에 핀 벚꽃이 벌써 흩날리고 있었다. 하나둘씩 떨어지는 꽃잎, 봄인가 싶더니 벌써 봄이 가고 있었다. 붙잡고 싶지만, 그렇다고 붙잡힐 봄이 아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내년에도 봄이 오겠지만, 내가 그 봄을 다시 맞을지 알 수 없다. 그때 봄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 봄이 지금 내게 찾아온 '이 봄'일 수 없는 것이다. 벚꽃이 지듯, 이 순간이 지나면 지금도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삶이 때때로 생각해 내는 그 플롯들이라니! 어떻게 삶이라는 여신과 감히 경쟁할 수 있겠나? 그 여신의 작품은 번역도 불가능하고, 말로 묘사할 수도 없는데."


<롤리타>로 유명한 러시아 출신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단편 <승객>에 나오는 구절이다. 삶과 경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계절에 대한 안타까움조차도 어떤 글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하긴, 어디 계절만 그런가. 내 곁을 머물다 떠나갔던 사람들, 내가 마주했던 상황들 모두 그렇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이 나중에 덜 후회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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