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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0. 2021

짧을수록 좋다. 믿게 할 수만 있다면

다자이 오사무/잎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기 전에 잠깐 틈을 내서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글 <잎> 비교적 짧은 글이다.




형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이 시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한테 그냥 좀 답답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겠다고 백 페이지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잖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정말이지 말은 짧을수록 좋아. 그걸로 믿게  수만 있다면."




여기에 내가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무척이나 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아마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중언부언했던  같다.


다자이 오사무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이리라. 하긴, 언뜻 생각해보면 글의 장단을 떠나 소설을 쓴다는 것, 읽는 것 자체가 모두 무용해 보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소설이람, 살아가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무슨 글이 또 그렇게 쓸데없이 긴지, 이렇게 생각하고 아예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 자극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용하지만은 않았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러는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때로 감정이입을 하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그 질문 속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이제는 소설을 통해 교훈이나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닌, 나와 다른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통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획일화된 사고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문학, 예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판에 박힌 듯한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탈출구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또한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본질상 '다르게 생각하기'이고, '다르게 바라보기'이다.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이 예술이고, 애초부터 다른 사물을 보는 것이 예술이다. 행복도 그렇다. 위기에서 기회를, 역경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아주 보통의 일상에서 기적 같은 특별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이다.


다르게 보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기억하고, 다른 것을 기억하는 것이 행복의 기술이다. 그런 행복의 기술이 예술을 통해 연습되는 것이다."




글과 말은 짧을수록 좋다. 그런데 복잡한 생각을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면을 단 한 줄로 표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너무 함축적으로 쓰다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글이 추상적으로 되어 버리기도 한다.


풍경 역시 때로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소설 속 장면 장면을 통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 묘사를 통해 나는 내 마음을 읽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다시 살아갈 힘도 얻었다.


그러니 글이 길다고 표현이 장황하다고 뭐라고 하지 말기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옮길 수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기를. 너무 길다고 읽다가 멈추지 말기를. 그렇게라도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시하지 말기를....


내가 썼던 문장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될 수 있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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