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Sep 11. 2021

꽃은 마음에, 향은 입안에

알베르 카뮈/결혼 여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세프는 과거에는 손으로 면을 뽑았는데 지금은 제면기로 메밀가루만을 이용해 단 2분 만에 면을 뽑을 수 있다며 메밀국수와 관련하여 이런 조언을 한다.

“시간은 흐르고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해 생활이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몇백 년 역사가 있는 메밀 전문점에서 반죽에 사용하는 우물과 장인, 나무 메밀판과 젓가락, 차를 마시는 듯 조용히 메밀을 음미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인생의 묘미라 생각된다."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속도를 중시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말도 없다.


그러나 잠시라도 멈추지 않으면 제대로 나갈 수 없고, 주어진 시간을 음미하지 않고선 올바른 방향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삶이 피곤한 건, 방향 없는 속도감 때문이다. 멈춤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허무한 것은 바쁘다는 이유로, 번거롭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인생의 묘미를 생략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렵고, 기억할 만한 것도 딱히 없다. 나에게 인생의 묘미는 무엇인가. 고요히 있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관조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걸어도 목표를 정해서 걸었고, 무엇을 보게 되더라도 필요 없으면 보지 않았지 않은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며칠 전부터 내리던 비가 이제야 그쳤다. 사무실 창가에 햇볕이 드는 것을 보고, 블라인드를 내리다가 문득 비가 올 때는 그렇게도 햇볕이 나기를 원하더니 막상 해가 나니 피하는 것은 무슨 심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조용히 삶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지금 이때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한계이기도 하고. 카뮈의 이 글을 읽으며 그의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





우리는 모순 속에 놓여 있지만

그 모순을 거부해야 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책무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무한한 고통을 진정시켜 줄

몇 가지 공식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찢어진 것을 꿰메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가 상상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며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배웠다.

 

<알베르 카뮈 _ 『결혼•여름』 >

작가의 이전글 짧을수록 좋다. 믿게 할 수만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