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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05. 2024

물결처럼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

존 밴빌 ㅡ 바다

느지막이 일어난 토요일 아침, 창으로 햇볕이 새어 들어오고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작년에 읽었던 존 밴빌의 <바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 건 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평온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긴 글이다.


"만일 라디오 옆에서 꿈에 빠져들던 그 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면, 그때 그 아이가 이야기했을 모습이 대체로 나의 나중의 모습이었다. 내 현재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것은 아무래도 놀라운 일 같다. 다수의 남자들이 자신의 운명에 실망하여, 사슬에 묶인 채 조용히 절망 속에서 시들어가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도 어렸을 때 나중에 커서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며 나와 같은 종류의 이미지, 모호한 동시에 특수한 이미지를 그려보았을지 궁금하다. 희망과 갈망이니, 모호한 야망이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아주 정확하고 분명한 기대를 품었다. 나는 기관사나 유명한 탐험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현실적이던 그때로부터 소망을 품은 마음으로 안개를 뚫고 무척이나 행복하게 상상된 지금을 살펴보았을 때, 방금 말했듯이 바로 현재 이 모습이 내가 그때 예상했을 나의 미래의 모습이다.


이해관계에 크게 들볶이지 않고 이렇다 할 야망도 없이 바로 이 방 같은 방에 앉아 있는 남자, 선장 의자에 앉아, 작은 탁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 그것도 바로 이런 철에, 온화한 날씨 속에 한 해가 끝을 향해 이울어가고, 낙엽들이 허둥지둥 달려가고,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낮의 밝음이 희미해지고, 가로등이 매일 저녁 어제보다 약간 더 일찍 켜지는 때에. 그래, 이것이 내가 어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늦가을에 맞이한 기나긴 화창한 날씨 같은 것, 고요의 상태, 호기심이 사라진 차분한 상태. 견디기 힘들었던 유년의 날것 그대로의 직접성은 다 사라지고, 어렸을 때 곤혹스러워하던 것은 다 풀리고,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고, 순간순간이 물이 똑똑 듣듯이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황금 방울처럼 똑똑, 마지막, 거의 알아챌 수도 없는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 (92 - 93p)




이 글을 인용한 건 나름 이유가 있다. 다소 관념적으로 썼지만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나의 미래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 이렇게 되리라고 상상한 적은 없다. 그때는 앞날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모호했으니까. 막연하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는지 정도에 불과했다.


어느덧 책 속의 주인공이 돌아보고 있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작가의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운명이 어디 있느냐고 호기롭게 말하며 오로지 내 의지와 뜻에 따라 삶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운명은 있었고 피할 수 없었던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렇다고 지금이 그때와 비교해서 별로인 건 아니다. 그 시절의 꿈은 상실했지만 또 다른 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과 부질없는 꿈에서 해방된 상태, 모든 것이 대체로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받아들여지는 수용의 태도, 삶이 주는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질문 자체를 품고 살아가면 된다는 부드러운 마음.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가 나를 존중해 주지 않으면 비참함을 넘어 남은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이다.


지금이라도 바꾸면 어떨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지만 자칫 그 과정에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모험을 하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버렸다. 작가처럼 삶을 하나의 부드러운 물결로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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