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심란하고 힘들 때, 가끔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훑어본다. 그러다 보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저 책을 읽을 때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때 이런 감정의 변화를 겪었지 등등. 책 속의 일부 문장들까지도.
책 속의 문장들을 보면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뭔가 애틋한 마음도 든다. 한편으로 세월의 무상함도 느낀다. 책과 함께 나도 늙어가는 것이다.
여행이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것이 대단하고 특별한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보냈던 그 시간들은 내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자 나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행위인 것은 바로 그 이유이다.
마음이 잡히지 않거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의 깊은 내면을 따라가 보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도 없었다. 내 고민이 나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읽은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때는 의미와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었는데, 이젠 노트에 남긴 이 문장만이 기억에 선명할 뿐이다.
"아, 사랑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낯선가. 나는 그 단어가 내쏘는 자장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달리 대치할 말이 없다면, 어쩔 것인가. 사랑이라고 이름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