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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14. 2024

자신만 남겨진 밤이 두려웠다

고민이 많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마음이 묶이면 제대로 된 잠을 자기 어렵다. 그때는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뭔가 다른 걸 해야 한다. 그 뭔가에 집중하면 피곤해질 테고, 스르르 잠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들 수 없는 밤을 채우는 상념, '생각'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생각이 늘 문제였다. 특히 혼자 있는 밤 시간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마음이 힘들어진다.


이기호 작가의 <수인>이라는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수영이 그랬다. 소설가인 수영은 이제 우리나라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외국으로 가야 한다. 그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프랑스를 희망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을 가게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도저히 밤을 조용히 넘기지 못한다.




"그는 매일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정말 프랑스에 가게 될까? 그곳에 정착하면 무엇을 하지? 얼마나 빨리 불어를 익힐 수 있을까? 다른 나라로 보내지면 어떡하지? 아니 정말 보내주기는 보내줄까....? 그는 매일 밤 그런 의문에서 쉬이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낮엔 모두 잊혀져 있던 미래들이, 밤만 되면 그의 곁으로 찾아와 하나둘 불을 밝혔다.


그는 그 불빛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아아, 그 순간 곁에 도스토옙스키라도 있었다면, 아니 베케트라도, 아니 그 지루한 조이스라도 있었다면.... 그는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고, 또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그들 중 한 권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그는 오로지 자신만 남겨진 밤이 두려웠다. 밤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이라는 초유의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현실. 그렇지 않을 때 그렇게 읽어보라고 했던 명작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그 책들을 읽을 수 없으니 안타깝고 더 보고 싶어 진다. 괴로움과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만 있다면, 그 재미없는 책들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괴로운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잊을 수 있으련만.


주인공처럼 홀로 남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특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마저 없다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상상해 보았다.


가끔은 그런 때가 있다. 떠밀려오는 시간의 홍수 속에서 대책 없이 허우적거릴 때, 그때는 시간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시간을 잊는 것은 곧 나를 잊는 것, 힘든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잊을 뭔가가 ㅡ 책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ㅡ 있다는 것만큼 복된 일도 없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수영과 달리 아직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있고 조이스도 있고 다자이 오사무도 있다. 그렇다면 우린 수영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문제는 밤에는 그 책들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선과 생각이 자기에게만 향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밤은 모든 것이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는 시간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지만 불안감이 찾아오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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