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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18. 2024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것

오래전 읽었던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언급한 이 글이 인용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할 것도 많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런 시간을 낼 여유가 있기는 할까. 불치병에 걸리거나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을 당할 때가 아니면 여간해선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렵다. 하물며 행복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안 그래도 즐거운데, 피곤하게 뭘 돌아본다는 말인가.


돌아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우니 영혼의 떨림, 그런 건 예전 로마시대 철학자들의 고민으로 치부하고 말지 모른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걸까.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응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잠시 보는 거 말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는 쑥스러울 뿐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요즘처럼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는 그 자체가 사치일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는 보이는 것, 특히 외모에 신경 쓰느라 영혼의 울림 더 나아가 떨림까지 경험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러나 겉모습은 잠깐이다. 나이가 들면 외모는 예전 같지 않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형외과가 그렇게 많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내면을 가꾸는 일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겉사람은 낡아져도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함이다. 그런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삶의 조건은 지난 시절이 훨씬 더 열악했다. 지금이 과거보다 사는 게 나아졌다고 하지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건 상황과 조건만으로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영혼의 떨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이라도 각자의 마음과 정신을 돌보지 않으면 가는 세월 앞에 실망할 일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때 형태가 잡히지 않은 채 우리 앞에 놓여 있던

그 열린 시간에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해야 했을까.


자유로워 깃털처럼 가벼웠고,

불확실하여 납처럼 무거웠던 그 시간에.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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