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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3. 2024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평생 조그만 마을의 교회종지기로 살다 간 <몽실언니>의 저자 권정생 선생(1937 - 2007)이 그의 안위와 건강을 걱정한 아동문학가 이오덕에게 쓴 편지(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저 때문에 너무 염려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빛 하늘 한 조각.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말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삶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느끼고 사느냐에 달려 있는데도 막상 내 삶으로는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갖지 못한 것, 앞으로 갖고 싶은 것에만 주목하느라 지금 갖고 있는 것엔 소홀했던 어리석음도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고,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과 상실감을 극복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맑게 트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않아도 진정한 부자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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