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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3. 2021

모순 그리고 지나가는 시간들

양귀자/모순

길었던 추석 연휴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한순간이었다. 마치 우리 인생과 같이.


순간순간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지만, 대개는 '그냥' 지나간 시간이었다. 기억할 것이 없는 시간들, 나는 그 시간들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책, 양귀자의 <모순> 오래전에 나온 소설이고,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냥 가볍게 읽고 싶어서 선택한 소설이었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는 말로 시작해서,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인생이 모순 투성이지만, 실은 우리가 모순된 존재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삶이 모순이라기보다는 그런 인간들의 삶이 투영되어 모순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때로는 생각이 너무 많아 주저하다가 행동으로 옮길 타이밍을 놓치고, 어떤 순간에는 생각 없이 지나치게 저돌적으로 행동부터 하고 보는 우리들. 그러니 모순은 어쩌면 예견된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모순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삶이 발전할 거라고 하는데, 일면 맞는 말이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가 의도한 계획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듯이, 우리는 살면서 이 모순된 감정이나 상황을 적절히 받아들여야 하리라. 시작부터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늘 실망하다가 결국에는 절망할지도 모르니까. 바쁠 때는 잠시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가도, 막상 시간이 많으면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역시 나 또한 모순이다.





며칠 글을 쓰지 않아서 그런지 한 줄 한 줄 쓰기가 어렵다. 무슨 글이든, 꾸준히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쓰지 않으니 여기에 들어오지도 않게 된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은 이미 겪었지만, 지금도 막막하다.


일기처럼 내 일상을 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쓰려고 하니 생각이 나지도 않고.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쓰지 않아도 책에 대한 줄거리나 정확한 평은 이곳에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이 남겼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휴 기간 내내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그만 생각해야 할 일들이다. 작가의 말대로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모순 _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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