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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6. 2024

지옥은 고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나는 결국 세상이라는 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참된 지옥이란 고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 내 눈에 세상이 비치는 한, 거기서 도망칠 수는 없다. 나 자신의 이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또한 세상의 관념과도 싸워야 한다."


제153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마타요시 나오키(またよし なおき)의 <불꽃 HIBANA>에 나오는 글이다.  


혼자 있다고 다 외로운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고독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혼자라는 것, 외롭다는 것,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박준 시인은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거라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 외로움이고,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고독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외로운가 아니면 고독한가.

아니면 둘 다인가.  


누군가를 만나면 외로움은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고독감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독은 내가 나와 진정으로 마주해야 비로소 사라진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다시 고독해진다. 자신과의 만남을 지속되기 어렵고, 항상 자신을 의식하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만나야 사라지는 게 고독이라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독 속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이든, 자발적인 고독이든 중요한 것은 혼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엇으로 채워갈 것인가'이다. 이는 결국 나를 채워간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나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어설프게 세상에 나가면 더 힘들어진다. 지옥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엄습하기 때문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지적대로 타인이 지옥인 것이다. 위인들이 일정 기간 고독과 침잠의 시간을 보낸 것도 다 그런 이유이다.


고독은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어쩌면 혼자라는 사실조차도 잊을 때 진정한 의미의 고독의 단계로 진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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