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한껏 머금은 공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축축하고 습한 날씨였다. 어제는 정말 걷기 싫었다. 어느덧 루틴이 되어버린 퇴근 후 산책, 하지만 때로는 그 루틴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어제처럼 날씨가 덥고 습할 때가 그렇다. 그저 적당히 중간만 가야지 하고 출발했는데, 걸음을 옮기다 보니 평소 가던 길을 다 걸었다.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는 순간,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행복은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 속에 놓여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이었다. 이 진실을 처음부터 알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 같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행복이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앞으로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린 그토록 자주 절망한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현재 누려야 할 내 삶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취 여부도 불분명한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그 현재만을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