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당해야 할 건 언제나 나 자신

by 서영수

"퀴퀘그는 절대로 남에게 먼저 접근하지 않았다. 인맥을 넓히고 싶은 욕망도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는 무언가 숭고한 것이 있었다. 그는 혼곶을 거쳐 고향에서 3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그는 마치 목성에라도 와 있는 듯 낯선 사람들 사이에 내던져져 있었지만, 불편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무척 편안해 보였다. 그는 최상의 평정심을 유지했고, 자신을 벗 삼아 혼자 지내는 데 만족했으며, 늘 스스로를 감당해 나갔다. 이는 분명 고결한 철학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허먼 멜빌의 위대한 소설 <모비 딕>에서 남태평양 작은 섬의 추장 아들이었던 퀴퀘그에 대한 이슈메일의 언급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시절 낯선 이방의 땅인 미국에 살면서 그가 겪어야 할 고초나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보았다. 인종차별은 당연하고, 말과 문화가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 또한 컸을 것이다.


문득 2007년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생소한 환경과 낯선 분위기,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 장벽. 정착하는 데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퀴퀘그처럼,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닌 미국에 살아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잔뜩 위축되어서 사람들을 피해 어딘가 숨어 있으려고만 했을 것 같다.


그러나 퀴퀘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혼자였지만 늘 평정심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자신을 감당하는 게 무어 그리 대단하느냐고.


하지만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부터도 나 자신을 건사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 익숙해 있지만 나 자신과 경쟁하는 데는 늘 소극적이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을 지루해하고 심지어 힘들어하기도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했고 지금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퀴퀘그는 스스로를 감당했고 건사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이 소설을 차차 읽어가면서 퀴퀘그의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갈 생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힘든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