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by 서영수

지난 주말 읽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의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흰고래, 모비 딕을 찾아 떠난 피쿼드호. 1등 항해사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을 지휘하는 에이해브 선장. 그리고 이들의 여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이슈메일. 그들은 망망대해 한복판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고요한 바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오히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일 마지막 해역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던 어느 고요한 달밤, 파도는 죄다 은빛 두루마리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파도가 일으키는 소용돌이는 온 바다에 부드럽게 퍼져 고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은빛 침묵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고 그들의 처지를 상상해 보았다. 아니, 내가 저 배의 선원이었다면 어떠했을지를 생각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내가 그 바다에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외로움'보다 차라리 내 의지를 실은 '고독', 즉 '침묵'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깊이 보게 되는 기회가 바로 고독한 순간이다. 고독한 시간을 이와 같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내가 고독한 공간과 시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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