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놓고 보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기분이 나빠지면서 그런 결과를 초래한 사람이 싫어진다. 의도가 좋아도, 아무리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결과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결과는 눈에 보이고 과정이나 의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가 흔하다.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의 사례와 같이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 훈련 과정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열심히 노력했어도 메달을 따지 못하면 실력 없는 선수로 낙인찍힌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근을 많이 해도 성과가 없으면 무능하다고 여겨지고, 별로 성실하지 않아도 결과만 좋으면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현실에 익숙해지면 인간관계마저도 결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 결과만을 놓고 비난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라고 해명해도 별 소용이 없다. "저 사람이 왜 그랬을까?"라는 간단한 질문만 했어도 그의 행동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결과에 눈이 멀어 '왜'라는 질문을 도무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저랬을까?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는 질문은 동기를 짚어보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범행 동기를 고려하고 참작할 바가 있으면 형량을 감경해 주는데,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여기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다. 자신의 실수는 용납하면서 타인의 잘못은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성찰은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자신도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임을 인정할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