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분명 무력감이었다. 그 무력감은 나를 짓누르며, 내 일상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벗어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왜 그런 상태에 빠졌는지 생각해 볼 여지는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수면 부족에 따른 피로의 축적, 여전한 더위 그리고 의료 파업과 같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세상 소식들, 사람들과의 피곤한 관계 등등. 원인을 찾자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즉 내 정신과 마음 상태였다. 다른 원인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으면, 커피로 각성을 시도해도, 아무리 현실을 외면해도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령 벗어났다고 느껴도 일시적이다.
무엇이 되었든, 빨리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며, '이런 날도 있겠지' 하고 느긋해져야 한다.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미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기 쉽다. 그런데 현실 앞에서 이렇게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들었던 회의감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좀 더 밝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정작 그렇게 쓴 글에는 내가 없었다. 문장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내용은 실체가 없이 공허했다.
진심과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글은 화려해도 죽은 글이다. 무엇을 위해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든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더 이상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그만 쓸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을의 초입이라는 9월이 되었지만, 내 삶은 여전히 8월의 더위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내 감정과 상태를 인정하면서, 천천히 그 무력감의 실체를 직시해 보는 거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 우리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리도 곤혹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을까,라고. 그러고는 팔짱을 끼거나 머리를 긁적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무리하게 벗어나려 들면, 우리는 '진짜가 아닌 장소'에 도달하게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