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자, 숨 가쁘게 달려왔던 바쁜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절이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향에 가거나 가족들을 만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더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명절은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 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거나(대개는 남의 문제이거나 세상 소식들이다),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어놓기라도 하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가족들 간의 갈등은 사소한 일이나 오해에서 비롯된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덕담과 격려가 오갈 것 같지만, 오히려 서로의 약점이나 상처를 잘 알고 있어 이를 건드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감정이 쌓인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러면 명절의 행복한 분위기가 일순간 무색해지고 만다.
솔직히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십여 년 전 추석,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의 대화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있었다. 친척 중에 한 명이 무심코 던진 별거 아닌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논쟁으로 번졌고, 결국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갈등으로 얼룩지는 경험을 하며, 명절이 마냥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꼭 필요한 말, 즉 인사나 안부 정도만 나누고,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화제를 꺼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가급적 듣는 편을 택하고 불필요한 대화는 자제하려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전적인 사람들의 말에 반응하는 내 자세나 태도를 잘 가다듬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쉽지 않다. 때로 불가피하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나 사회 문제 같은 주제가 나오면 침묵을 지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문제일수록 더더욱 말을 줄이는 것이 낫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넘기는 게 곤란한 상황을 피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말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가끔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가족도 있다. 그때는 불교에서 말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겉으로는 당신 말에 동의한다는 자세를 보이면 된다. 굳이 언쟁을 벌여 서로 얼굴을 붉히기보다 미소로 상황을 넘기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말을 줄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잘 다스리며 미소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자칫 험악해질 수 있는 명절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