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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21. 2021

내 안에서 부활한 인간

도스토옙스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알료사,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발견했단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부활했어! 이 사람은 전에도 항상 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악천후를 보내주지 않으셨더라면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시베리아 광산에 끌려가 이십 년 동안 중노동을 하게 될 거라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이제 그건 별로 무섭지 않구나.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완전히 다른 건데, 지금은 그게 나의 유일하고 지독한 두려움이란다. 내 안에서 부활한 그 인간이 다시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걱정이고 두려움이야."


<도스토옙스키 _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 글은 도스토옙스키의 역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미챠 카라마조프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갇혀 있는 형무소에서 동생 알료샤에게 한 고백이다.


우리는 미챠처럼 자신 안에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개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삶에도 관성이 있어 사는 게 평온하면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건 귀찮은 일이고,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신이 주신 은총이다. 물론 그 상황이 닥치면 힘들다. 보통 사람은 절망하고 포기하고 만다. 어쩌겠는가? 고난 없이는 얻기 어려운 삶의 진리가 있으니. 어려움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니 고난의 역설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아, 나는 이런 인간이었구나! 하는 탄식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원치 않은 일들, 상황 속에서 나를 재발견했을까? 아니면, 원망과 미움, 불평과 불만만 켜켜이 쌓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건 내가 아직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 상황을 대하는 지금의 자세로 알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용서는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에로스적인 사랑도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연민, 용서를 포함한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이해, 그도 나와 다를 바 없는 결점 많고 실수하는 인간임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용서다.


하여, 용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우리는 용서함으로써 더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다.


나도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나님이 나에게 짊어주신 인생의 짐과 때때로 보내주신 악천후가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진리였다. 이제 남은 건 그 깨달음대로 실천하는 것뿐. 미챠처럼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을 발견하는 거야.

끊임없이, 영원히 발견하는 거지.

이미 발견된 것은 중요하지 않아." 


<도스토옙스키 _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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