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허송세월』을 읽고

by 신윤수

김훈은 1948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하얼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와 산문집 『연필로 쓰기』을 썼다.


그중 『하얼빈』을 읽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결심과 그의 대의명분이 그려져 있었다.


그의 책 『허송세월』에는 철모 똥바가지가 그려져 있다. 그의 똥 이야기다.


내 소년시절에 햇볕 냄새는 똥 냄새와 맞먹을 만큼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냄새였다. 똥 냄새는 밥과의 순환고리에 묶여서 생로병사의 무게로 장엄했고, 햇볕 냄새는 먹을 것이 모자라는 헛헛함이나 어른들의 부부싸움, 숙제조사와 시험, 매 맞기와 벌서기의 고통이 없는 자유의 냄새였다.


똥 냄새는 무거워서 마을에 낮게 깔려 있었고 골목마다 절여져 있었지만, 햇볕 냄새는 가벼워서 눌어붙지 않았고 천지간이 가득 차면서도 질량감이 없어져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나는 이처럼 좋은 것이 세상에 가득 차서 모두 공짜라는 현실이 놀라웠다.

(323~324쪽)


그의 책 앞머리가 「늙기의 즐거움」이다. 늙기가 즐겁기까지 할라나.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핸드폰에 부고(訃告)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무한공간을 날아온 이 정보는 발신과 수신 사이에 시차가 없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사물화되어 있고 사물화된 만큼 허구로 느껴지지만 죽음은 확실히 배달되어 있고, 조위금을 기다린다라는 은행계좌도 찍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은 희미한데, 죽은 뒤의 시간의 낯섦은 경험되지 않았어도 뚜렷하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겉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다. (7쪽)


거기다 그의 술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3년 전부터 심혈관 계통의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젊은 의사는 술을 ‘한 방울’도 먹으면 안 된다고 나를 겁주었다. 술을 먹으면 ‘죽는다’라고 극언을 할 때도 있었다. 나는 ‘한 방울’에 짜증이 나서 의사에게 물었다. “한 방울도 안 되나요?”---“얼마나 마셨습니까?” “극소량입니다”---“와인 두어 잔입니다. 잔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어요. 그냥 미량이지요, 요만큼.” ---“안 됩니다. 이러시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치료받은 것이 헛일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을 회복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정상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내가 치료를 받는 ‘목적’이라고 의사에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 말을 참았다. (19쪽)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슬플 때는 웃음이 나오고 기쁠 때는 눈물이 나오는데, 웃음이나 눈물이나 물량이 너무 적어서 나오는 시늉만 한다. (37쪽)


그의 허송세월이다. 그는 허송세월로 바쁘다고 한다.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 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新生)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43쪽)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지난 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49쪽)

화장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이 가벼움으로 남은 삶의 하중(荷重)을 견디어 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 보니까, 일상생활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51쪽)


끝까지 그의 책을 읽었지만 이야기를 여기서 그친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활의 무게를 줄여 가는 버릇이 생긴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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