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아에 대한 설명이다.
줄기와 잎에서 신맛이 난다. 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자잘한 꽃이 모여 핀다. 잎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 톱니가 있다. 어린잎은 다른 산나물과 데쳐서 무친다. 생으로 쌈 싸 먹기도 하고, 무치거나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연한 줄기를 찔레처럼 꺾어 먹기도 한다.
- 나물 할 때 : 봄
- 나물 하는 방법 : 부드러운 잎을 뜯는다.
- 추천 음식 : 쌈, 샐러드, 생으로나 데쳐서 무침, 줄기 꺾어 먹기
[네이버 지식백과] 싱아(산나물 들나물 대백과, 2010. 3. 1., 이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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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이야기를 한 편의 활동사진이 교차되듯 맑고 진실되게 그려 낸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작가 박완서가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그 많던 싱아---』를 쓰겠다고 새삼 공언한 것이 무엇을 가리킴인가라는 물음에 한 가지 대답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기억의 도움을 받는 회상의 형식, 이것만이 소설의 순수 혈통이라는 것, 주관·객관의 자기 속에서의 통일이 가능한 영역이야말로 소설이 서고 머무를 수 있는 장소라는 것, 무슨 손재주라든가 꾸며서 만들기를 떠나 본질적인 소설의 장소에 들어가겠다는 결의로 쓴 것이 『그 많던 싱아---』이기에 이는 소설 중에서도 진짜 소설이라는 작가 박씨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라 할 수 없을까. 이 의지 표명이 어찌 자화상이라는 속된 표현을 용납하랴. 소설과 기억, 이것만큼 본질적인 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김윤식, 322~323쪽)
기억에 의한 글쓰기, 더구나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존하는 글쓰기는 소설밖에 없다는 것, 그것의 철저한 구경적 형식으로 제출된 것이 『그 많던 싱아---』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순수 혈통 지키기의 첫 번이자 마지막 보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윤식, 332쪽)
싱아라는 식물이 그려져 있다. 싱아는 산나물 들나물이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89쪽)
작가는 가끔 시골의 싱아를 생각했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말수 적은 오빠도 내 향수를 알아차리고는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손가락으로 보여 주곤 했다. (106쪽)
마침내 개성역이었다. 엄마는 여름 교복을 산뜻하게 차려입은 아들과 물방울무늬 내리닫이로 양장을 한 딸을 자랑스럽게 앞세우고 역에 내렸다. (---) 고향 산천은 온통 푸르고 싱그러웠다. 고개를 넘고 들꽃을 꺾고 개울물에 땀을 닦으며 마침내 서울을 못 벗어난 서울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들판의 싱아도 여전히 지천이었자먼 이미 쇠서 먹을 만하지는 않았다. (112쪽)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명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311쪽)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녀의 긴장이 박완서 문학의 근원에 해당한다.
모녀 대결 의식이야말로 이 작품의 긴장력이자 박완서 문학의 긴장력의 근원에 해당되는 것이다. (337쪽)
최초로 유리창에서 반사되는 햇빛을 보게 된 광경이다.
네모난 건물 한 귀퉁이에서 눈부신 불덩이 같은 게 이글거리는 게 내 눈을 쏘았다. 여태껏 내가 본 어떤 빛하고도 달랐다. 불길이 치솟지는 않았지만 불길보다 더 강렬한 빛이었다. 나는 두려워하면서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는 바보처럼 굴지 말라고, 저건 유리창에 햇빛이 비친 거라고 말했다. (49쪽)
조리풀을 뜯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먹을 만한 풀을 찾았지만, 선바위 주위 척박한 땅에는 모질고 억센 잡풀밖에 자랄지 않았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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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성장소설은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한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들로 정의된다. (한용환, 『소설학 사전』, 문예출판사, 1999, 251쪽).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책, 2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