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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Sep 21. 2022

우리도 존경할 인물이 있어야 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 중계방송을 보았다. 전세계에서 40억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느낀 점이 많지만 특히 영국인의 각별한 존경심과 자긍심을 보았다. 입헌군주국에서 70년이나 재위한 군주인데, 어찌 좋은 일만 있었을까. 그런데도 국민이 모두 합심해서 여왕을 장엄하게 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여왕의 경력을 보았다. 인터넷에 소개된 프로필에는 26살에 여왕이 되는데, 19살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영국 육군의 차량정비병으로 복무했다는 이력이 있었다. 이렇게 나라 지키는 의무부터 솔선수범하는 왕실(Royal Family) 존경받는 것, 군주의 덕성과 책무 완수가 국민의 존경하는 마음과 비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에 참가한 찰스 3세 국왕, 앤 공주 등 왕족들이 모두 군복을 입고 지휘봉과 칼을 차고 있었다. 영국 왕실은  이렇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켜 솔선수범으로 군에 복무했고, 유사시 나라를 지킬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제대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영국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도 영국처럼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우선 전직 대통령부터 존경하자는 이야기를 쓰려 한다. 다음은 2020년에 쓴『푸른 나라 공화국』 238~242쪽의 글을 고쳐 실었다.       



기억하고 존경하자     


유럽 역사를 통틀어 혁명 중 왕을 죽인 사건이 두 번 있었다. 1649년 영국은 청교도혁명에서 크롬웰이 찰스 1세를, 1793년 프랑스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가 루이 16세를 죽였다.     


존경하는 사람? (자작시)     


세종대왕. 왜? 훌륭한 임금 성왕이니까, 한글도 만들어 주셨으니까

이순신 제독(장군이 아니라구, 육군 아니라 해군이니까) 왜? 용감하고 왜놈들 다 척 했으니까

김구 선생님, 안중근, 안창호. 왜? 독립운동 하셔짜나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최근 김훈의『하얼빈』을 읽었다)


그리구 누구?

집안 아저씨뻘인데 단재 신채호     


그런데 우리는 매번 혁명을 하는지 5년마다 앞 사람을 어쩌고저쩌고 한다

우리 대통령들은 왜 끝이 안 좋지? 죽거나 감방에 가지?     


임기 끝나면 바로 끝이거든, 왕에서 쫓겨나니까     


제발 존경하자!

앞 시대를, 그리고 앞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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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미래에 대하여      


시간은 과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역사에 대해 에드워드 카(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고 그로서 새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과거와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들어오면 늘 '과거청산한다, 역사바로세우기 한다'고 한다. 앞 사람과 앞 시대라면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본다. 그때 그 사람들도 대개는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했을 텐데. 그리고 혹시나 나쁜 일을 했다면 어떤 사정이 있었을 텐데.      


헌법 제90조에는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생소한 이름의 기구가 있다. 헌법 조문 순서가 국무회의(제89조), 국가원로자문회의(제90조), 국가안전보장회의(제91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제92조), 국민경제자문회의(제93조)로 되어있으니, 1987년 헌법을 만들 때에는 국무회의 다음으로 중요한 기구를 만들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이 기구는 국정의 중요사항에 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한 기구로서, 국가원로로 구성되고, 회의 의장은 전직 대통령이 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록을 살펴보니 1987년 헌법을 만들고 나서 직선제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한 노태우 정부에서 전두환이 의장으로 취임하였으나 얼마 안 있다가 퇴임하고 나서, 바로 폐지법률까지 나와 완전히 사문화(死文化)되어 있다.     

전직 대통령을 대우하는 법률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현직 대통령 보수의 95%를 주고, 대통령이 사망하면 배우자에게 70%를 준다. 박정희 정부이던 1969년 제정되었는데, 제정 당시에는 전직 대통령에게 70%, 사망하면 배우자에게 50%를 주도록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에게 각료급의 보수를 준다고 한다. 바로 직전 트럼프와 바이든은 전직 대통령을 만나거나 자문을 구하지 않는데, 전에는 현직과 전직 대통령이 만나는 일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은 대부분 불행하게 되었다.(이하에서 대통령이란 용어는 뺀다. 모두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해외 망명하였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죽었고, 최규하는 군사정부에 의하여 억지로 내려왔고, 전두환·노태우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노무현은 자살했고, 박근혜와 이명박은 감옥에 수감되었다.       


우리는 왜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전직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모두 결정적 하자가 있어서 존경할 수 없는 걸까. 우연히 전에 탄압을 받은 사람이 공교롭게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일까. 그래서 정치 보복을 하게 되는 걸까.     


앞 시대와 인물의 평가를 한 세대(30년)쯤 내버려 두면 어떨까. 이게 너무 길다면 10년이라도 내버려두자. 전직 국가원수만이라도 일단 모두 존경하고, 나중에 역사적 평가를 받도록 하는 관행을 만들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자(지금은 이명박만 남았다). 재임 시 잘한 것을 찾아내어 칭찬하기 운동을 벌이자. 국민 모두가 전직 대통령의 통치를 받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욕먹을 일만 했을 리는 없지 않을까. 이건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아니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밖에 존경할 사람을 널리 찾아보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경험으로 다음 대통령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대개 회고록 집필이나 강연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퇴임하면 일반인으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살 수 있어야 되는데, 재임기간중 왕처럼 군림하다 퇴임하면 불행해지는 게 안타깝다.     


2016년 12월 6일 8년간 총리로 있던 뉴질랜드의 존 키(Jonn Key)는 ‘아내가 그만두라 해서, 아이들과 가족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나라 부럽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사임하였다.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만 둘 줄 안다. 우리에게는 지금껏 그만두기는커녕, 임기를 연장하거나 자기만은 중임제한을 폐지하라고 한 사람까지 있었다. 이제 좀 나아지려나.             



최근 언론보도에서     


국회 국방위에서 곧 있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부르자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고 한다. 어떤 진실을 규명하는데 필요한지 모르지만 이런 일이 그렇지 않아도 위태위태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해치지 않는지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사절로 런던에 간 윤석열 대통령이 시간에 쫓겨 조문을 건너 뛰는바람에 어제 국회가 시끄러운 걸 보았다. 여기저기 들리는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 1. 대통령이 조문사절로 가서 조문을 사절했다, 2. 찰스 3세가 주최한 리셉션에만 참석했다, 3. 장례식 참석 후 다음날 조문록을 작성하는데 새 페이지(오른쪽)가 아니라 타인이 작성한 페이지 뒷장(왼쪽)에 썼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일반 시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회에 전직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이번 뿐 아니라 다음 대통령에게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고, 전세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눈들은 '왜 저 나라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형사처벌하겠다고 으르고, 감옥에 가두고, 죽게 하고, 국회에 불러 증언하라고 망신을 주지' 하며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입헌군주국인 영국에서는 왕과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reign but not rule)’ 전통이 있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영국도 과거에 세계 여러 곳에 제국주의 침략을 하였고, 남의 자유와 번영에 암초가 된 적이 많았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1952년~2022년 재위)에 많이 치유된 모양인지, 각국의 조문 인파, 세계 유력 방송의 현장 중계방송이 집중되는 걸 보니, 여왕이 재위 70년 동안 영국과 자신이 국가원수로 되어 있는 나라들을 잘 이끌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걸 보았다. 이런 국가원수와 시민을 가져야 진짜 선진국이 되는 모양이다.


여왕의 마지막 공식 업무가 자신(1926년생)과 이름까지 같은 엘리자베스 트러스(1975년 생)를 만나 그녀를 총리로 인정한 일이었고, 그후 이틀 정도 아팠다가 소천했다니 참 천복(天福)을 받았구나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구구팔팔일이삼사'까지 달성한 모습이다.       


어느 나라든 지도자를 잘 만나야 미래가 밝아진다. 우리나라가 어떤이의 치세를 기억하고, 그를 영원히 기억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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