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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Oct 09. 2022

우리말글을 제대로 지키자

다시 한글날이다      


우리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하여 국경일(공휴일)로 기념한다. 자기 문자를 만든 날을 이렇게 기념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때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에서 2005년까지다. 그때는 공휴일을 줄여서라도 일을 더 해야 한다며 국경일을 줄였고,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졌다. 그러다가 2005년 12월 8일 256회 정기국회에서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남북언어 통합을 위한 국제학술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은 오랫동안 한글(그들은 ‘조선어’라고 부른다)을 전용하면서(1968년부터 중학부터 한자(漢字) 교육을 한다), 새로운 말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남북통일 과제에는 남북언어의 이질성을 해소하는 언어통합문제도 있다.      


프랑스는 1992년 제5공화국 헌법 제2조에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다’라고 정해 놓았다. 캐나다에서 다른 주는 모두 영어가 공용어인데, 퀘벡주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하는 독자적 언어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요즈음 K-팝 등에서 한국어와 한글 자막이 자주 사용된다. 얼마 전에는 CNN 광고에서 한국 소방관이 우리말을 하고, 영어 자막이 붙어 있는 광고가 있었다.        


IT시대에 한글이 효율적이고 적합한 문자이고, 문자로서의 과학성과 체계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한류에 힘입어 한국의 노래, 영화, 드라마, 문학작품, 전통문화를 알고 싶어 우리말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이런 우리말글이 제대로 인정을 받고 있나? 오히려 조선시대의 언문(諺文)처럼 ‘천한 말’ 취급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다.     


히데끼의한글의 탄생     


일본인 이로노마 히데끼가『한글의 탄생』(돌베개, 2011)이라는 책을 썼다. 책머리에 ‘한글의 탄생-그것은 문자의 탄생이자 지(知)를 구성하는 원자(原子)의 탄생이고 <쓰는 것>과 <쓰여진 것>, 즉 <에크리튀르>의 혁명이다. 새로운 미를 만들어내는 <게슈탈트Gestalt=형태>의 혁명이다. 이 책이 그러한 거대한 탄생의 드라마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는 ‘세종은 단순히 현명한 군주가 아니라 극한까지 배우려 했던 거대한 지성이다. 기원전 2000년께 지금의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시작된 표음문자, 알파벳 로드가 한국에 이르러 확고한 종언을 선언했다. 조선왕조의 문자가 유라시아의 정상에 우뚝 섰다. 마치 논리를 형태화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극히 논리적인 구조이면서도 유연한 쓰임을 가능케 한 점이다. 글자 모양의 형성도 그렇고, 음성을 초성·중성·종성 그리고 성조라는 사분법으로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구조화하면서도 실제 쓰임에서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가능하다.”고 썼다.     


히데끼는 미술가였다. 어쩌다『훈민정음 해례본』을 읽는 순간 마치 공기진동에 불과했던 소리가 문자로 바뀌는 순간을 엿보는 감동을 느꼈고, 한글의 형태적 측면에 매력을 느껴 언어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정작 한국사람인 나는 관심도 지식도 부족한 게 부끄럽다.        


한글전쟁언어의 종말』      


김흥식은 ‘우리말 우리글 5천년 쟁투사’라는 부제가 붙은 『한글전쟁』 (서해문집, 2014)의 첫머리에 ‘오늘도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냉전(冷戰), 즉 저 밑바닥에서 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며 싸우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열띤 전투가 벌어지는 열전(熱戰) 중’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한글전쟁은 수천 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벌어진, 무력을 동원한 무수한 전쟁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전쟁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전쟁이 한반도를 덮쳐 수많은 선조의 인명과 수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졌지만 한겨레의 문화와 언어는 무수한 상처를 입으면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한글전쟁은 그 본질이 문자(文字) 전쟁이고, 문화(文化) 전쟁이며, 우리를 우리로 인식하게 하는 본질, 즉 언어와 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썼다.     


앤드류 달비는 『언어의 종말』(오영나 옮김, 작가정신, 2008)에서 ‘2주에 한 개꼴로 지역 고유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2만여 년 전부터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쓰이던 4백여 개의 언어는 유럽인의 침략 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멸했으며, 살아남은 언어들도 그 사용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5천 개 가량의 언어 중 과반수가 이번 세기 동안에 사라질 것이다. 언어적 다양성 소멸은 결국 각각의 고유한 문화, 세계관, 언어의 창의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하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썼다.     


우리말글의 운명


그렇다면 한국어나 한글은 어떻게 될까? 한때 영어공용화 논쟁이 있었다. 지금의 국내 언어사용 실상을 보면 앞으로 우리말글이 영어 등 외국어에 경쟁력이 밀려 제2의 언어가 되거나 소수언어가 되는 형태로 생존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정녕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1947년 북한정권 수립 이래 한글(북한은 ‘조선어’라고 한다) 전용정책을 고수해 왔다. 여기에는 언어를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라고 보는 유물론적 언어관에 입각한 북한 언어 정책, 이른바 김일성 주체 사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언어를 개조하는 정책의 추진과 폐쇄적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생활, 당의 통제 하에 철자법 개혁, 한자 폐지, 말다듬기 운동, 문화어 운동 등을 강력하게 펼쳤다.     


베트남과 몽골을 보자. 그들은 로마자와 러시아글자로 자기네 말을 표기한다. 이것이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지켜볼 일이지만, 원래 하와이 왕국(지금은 미국 50개 주의 하나다)이 미국에 병합되면서 영어와 함께 하와이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면서 하와이어 사용도가 떨어졌다가 일부 주민들의 노력으로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말과 우리글     


『나라말이 사라진 날』(정세환 지음, 생각정원, 2020)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글을 사명으로 다듬고, 피땀으로 지킨 사람들, ‘조선어학회사건’에 대한 글이다. 이미 역사에서 배웠고,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아 대강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 소개된 생생한 이야기가 눈시울을 적셨다. 책을 쓴 방송작가는 30대 중반부터 우리말글 사랑운동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나는 60살이 다 되어서부턴 데.       


국어라는 명칭은 좀 이상하다. 나는 이것저것 외국어 배우기를 해왔다. 어떤 언어에도 능숙하지 못하지만, 영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조금은 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자기 언어를 우리처럼 국어(國語), ‘나라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언어를 각각 영어(english), 中國語(chinese), 독일어(deutsch), 프랑스어(français)라고 부른다.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1446년 훈민정음으로 반포된 우리글(한글)은 언문(諺文), 정음,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국문’이라 명명되었다. 그런데 국문(國文)이란 ‘자기나라에서 쓰는 고유한 글자’라는 뜻이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그동안 한글이란 말이 어디서 시작되었나 궁금했는데, 주시경이 ‘한글’이란 말을 처음 썼다고 한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 55쪽에 한글의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1913년 3월 13일 배달말글몯음 임시총회 기록에 ‘한글’이 등장한다. 이날 회원들은 보성중학교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모임의 이름 ‘배달말글몯음’을 ‘한글모’로 바꾸었는데, ‘배달말글’을 ‘한글’로 줄이고 ‘몯음’을 ‘모’로 줄였다. ‘배달말글’을 갈음한 ‘한글’을 우리 문자를 이르는 명칭으로 사용하겠다는 선언은 없었지만 ‘한글’은 훈민정음, 정음, 언문, 특히 조선글이라는 시대의 변화에 걸맞지 않은 어중간한 이름을 대체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훗날 최현배는 주시경이 한글이란 이름을 지었으며, 한글은 ‘하나, 크다, 바르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가 제각기 영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라 부르는데, 왜 우리는 국어라고 하면서, ‘한국어’나 ‘한글’ 등 명칭을 붙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만일 우리말글이 없다면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글(당시에는 ‘조선어’라고 했다. 국어는 일본어였다.)을 쓰지 못하게 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참 동안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 사이의 논쟁도 있었다. 전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면 영어를 써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말글이 오늘에 오기까지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공용어가 무어지? 물으면 당연히 ‘한국어’나 한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좀 생각해 보면  왜 ‘국어’라고 하느냐이다. 나는 여기서 일단 ‘우리말글’로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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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나라말이 사라진 날』 4쪽)     


이제 고오고쿠 신민노 세이시를 읊겠습니다. 모두 힘차게 암송하도록!(『내 이름은 이 강산』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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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는 고개를 크게 끄덜거렸다. 정말이지 ‘리노이에 코우잔’보다, ‘이강산’이 백 배 천 배는 좋았다.

(위 책 100쪽)     


앞의 글은 『나라말이 사라진 날』을 시작하는 문장이다. 국어를 썼다가 혼났다고? 어떤 여학생이 자기 일기에 쓴 글이다. 여기서 국어는 조선어다.      


뒤의 글은 『내 이름은 이 강산』 (신현수 글, 이준선 그림, 꿈초, 2018)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인데, 일제의 창씨개명에 얽힌 이야기다.     


만약 고유어가 없다면, 겨레의 문화와 전통이 없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조선어학회가 여러 해(약 20년) 작업으로「말모이」라는 우리말 사전을 만들지 않았다면, 일제 35년이  지나고, 창씨개명으로 서로 부르는 이름마저 일본말로 바뀌었으니, 나중에 해방이 되더라도, 우리말 단어나 어휘가 없어 지금도 일본어를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국가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를 지배한 식민 모국의 말을 쓰듯이 말이다.     


1987년에 복거일은 『비명(碑銘)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우리가 광복도 되지 않았고, 철저히 일본인이 되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중국을 지배했던 청나라가 자신들 고유어인 만주어를 잃어버려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버렸다. 우리가 만약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고유말글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라말글과 역사 지키기     


중국 시진핑은 미국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동북아 역사를 통째로 조작하고 있다. 만일 우리에게 고유어가 없다면 그는 어떻게 말할까. ‘봐라 쟤들은 자기네 말도 없어, 우리 중국말 쓰는 거 보면 알지’라고 했을 거다.      


베트남어는 중국어보다 성조가 복잡하다고 들었다. 베트남어 어휘 중 60%에서 70%가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중국과 전쟁 후 베트남이 표기수단을 로마자로 바꾼 것은 한자(漢字)에서 독립하여 자기들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한자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대체로 50% 정도. 영어의 비중이 10%에서 20%, 일본어도 좀 남아 있을 거다. 이러다 보면 우리 고유어는 거의 없는 걸까. 대대적으로  아름다운 우리말 찾기 운동을 해야겠다.     


우리 언어정책의 경과      


이광석은 『국어정책론』 (도서출판 역락, 2016)에서 ‘문화의 터전은 말과 글의 정책이다. 말과 글의 정책은 국어학자나 국어와 관계있는 이들만의 생각이 아니며, 모든 국민들의 문제이다. 그동안 글의 정책은 한글전용정책이었고, 말의 정책은 국어전용정책이었다. 이를 통해 모든 국민들이 하나가 되는 하나되기(one-nation)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며, 또한 이 시점에서 이를 송두리째 엎을 근거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말과 글의 정책을 발전시켜서 한글문화권의 창조로 이어가야 한다. 문화의 터전이라는 국어정책의 재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썼다.     


그는 국어정책이란 ‘국어(한국어와 한글로 이해하려고 한다)를 대상으로 하여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국어정책은 국가가 국어정책에 개입하느냐 내버려 두느냐에 따라 ‘누가’라는 측면에서는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위로부터의 결정과 아래로부터의 결정방식으로 나뉜다. 사회적 이슈를 그냥 사회에 맡겨두는 경우를 방임주의라 하고, 국가가 사회적 이슈를 받아들여 해결하려는 태도가 국가개입주의다.’라고 썼다.     


국어기본법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은 우리 언어정책의 기본이 되는 법이다. 이 법은 국가와 국민에게 국어발전 등에 힘쓰라고 선언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 국어발전·보전에 대한 책무를 정하였지만, 기업이나 일반 국민에게는 어떤 책무도 부과하지 않고 않다.      


이 법에는 어문규범 제정(제11조), 공문서의 한글 작성(제14조), 국어문화의 확산(제15조), 국어의 보급(제19조), 국어능력향상정책(제22조) 등이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의 행정법령과 달리 위반을 하더라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일종의 훈시적 법령이다.    

   

프랑스와 캐나다 퀘벡의 언어정책을 살펴보자.          


프랑스의 언어정책      


프랑스에서는 1539년 빌레르코트레 칙령이 발포되면서, 법적 문서와 행정문서는 오직 프랑스어만 사용하고 재판 진행도 프랑스어로 하도록 규정하였다. 1635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가 설립된다. 우리의 국립국어원과 유사하다.      


20세기에 들어 영어에 대해 위협을 느낀 프랑스는 1992년 헌법에 프랑스어 관련 조항을 넣는다. 헌법 제2조 제1항에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다.(La langue de la République est le français.)’라고 선언하였다.     

프랑스 헌법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문제가 되는 국기, 국가까지 정해 놓았다.     


프랑스 헌법 제2조

①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다.

② 국가의 상징은 청, 백, 적의 삼색기다.

③ 국가(國歌)는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이다.

④ 공화국의 국시는 ‘자유, 평등, 우애’이다.

⑤ 공화국의 원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다.     


전에는 바로리올법(1975년)이 있었는데, 헌법 개정 후 이를 강화한 투봉법(1994년)을 만들었다. 바로리올법과 투봉법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① 상품명칭, 소개, 광고, 사용안내, 상품·서비스의 개런티 조건, 신용장, 청구서 및 영수증에서 프랑스어 사용 의무화

② 고용계약, 공공기관 단체 및 개인 간 계약에 프랑스어 사용 의무화

③ 위반 시 제재(범칙금 부과)

   → 바로리올법에는 제재규정이 없었지만 투봉법에서 벌칙규정을 두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프랑스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언어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① 차용어(특히 영어)로부터 프랑스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위기의식

② 사회에서 프랑스어 사용이 더 고상하다는 인식

③ 프랑스어가 외국에서 사용되도록 권장해야 한다는 자존감     


캐나다 퀘벡의 언어정책     


캐나다 퀘벡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북아메리카에서 특이하게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지역이다. 그들은 유럽 프랑스어 사용지역(이를 프랑코폰(francophone)이라고 부른다)인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보다 엄격하게 프랑스어를 지키고 있다.     


퀘벡은 원래 누벨프랑스(Nouvelle France)라는 프랑스 식민지였지만 프랑스가 유럽에서 영국과의 전쟁(7년 전쟁)에서 지고 나서 1763년 파리조약에서 영국 식민지로 바뀐 슬픈 역사가 있다. 영국은 퀘벡의 프랑스인들에 대해 상황에 따라 탄압과 회유 사이를 오가며 동화정책을 폈다고 한다.      


고국 프랑스가 북아메리카에 고립된 자기들을 버렸는데도, 퀘벡인이 프랑스어를 굳게 지킨 것은 언어와 문화전통을 사랑하고 지키는 의지에서였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식민지 조선에 대해 조선어 말살과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처럼 퀘벡에도 여러차례 위기가 있었다.     


프랑스가 1992년에 헌법에 ‘공용어를 프랑스어로 한다’고 명시하고, 투봉법(Loi Toubon) 등으로 프랑스어 지키기에 나섰지만, 캐나다 퀘벡은 이미 1977년에 101법안으로 알려진 프랑스어헌장(Charte de la langue française)을 선포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 하였다. 프랑스 본국보다 퀘벡이 프랑스어 지키기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헌법에 우리말글에 대한 조항을 넣자     


이광석은 『국어정책론』에서 ‘세계 191개 나라 중 헌법에 언어 조항이 있는 국가가 125개국(65%)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 40여 개 나라의 헌법에는 언어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관습헌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헌법에다가 언어 조항을 두는데, 일제강점기에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켜낸 우리말글에 대해, 헌법에 아무런 언급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언어문제가 없다는 건지 관심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 헌법에 우리말글에 관한 사항을 명시해야 한다. 물방울 이론(trickle-down theory)이  있다. 정부, 대학, 사회 지도층부터 우리말글 사용을 솔선수범하자.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위쪽에서 언어사용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고, 대통령은 취임시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겠다는 선서를 한다(헌법 제69조). 그런데 전통문화·민족문화 중에서 우리말글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훈민정음해례본은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우리 영토를 말도 안 되게 축소시켜 놓았다. 우리말글을 쓰는 곳은 모두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으니, 헌법 제3조(영토조항)를 우리말글과 영토에 관한 조항으로 바꾸자.         


헌법 제3(우리말글과 영토)

  ① 대한민국의 공용 언어(말과 글)는 한국어와 한글이다.

  ② 대한민국의 영토는 역사상 인정된 고유의 판도로 한다.          



앞으로 추진할 과제       


① 국어기본법의 명칭을 ‘국어기본법’에서 ‘한국어와 한글기본법’으로 바꾸자. 한글을 ‘말과 글이 포함된 것’으로 정의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러면 한글기본법?      


② 국민에게 우리말글 사용에 관한 책무를 부과하자. 한글로 간판·상품과 서비스를 표기하도록 하고, 수출품에는 한글을 먼저 쓰고 로마자를 쓰게 하자.     


한국이 만들었다, Korea Made  

한국에서 만들었다, Made in Korea     


③ 우리말글 사용을 장려하는 시민운동을 벌이자. 국어심의회를 ‘한국어심의회’ 또는 ‘우리말글심의회’로 바꾸자.     


④ 우리 고유어, 토속어, 예쁜 이름 찾기 운동을 벌이자.        


⑤ 남북 언어의 이질감 해소를 위해 서로 신문과 방송을 개방하자          



세종학당보다 한국어학당’ 또는 한글학당이 어떨까     


외국에 한국어를 배우는 세종학당이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뜻을 기린 것으로 보이는데, 이보다 ‘한국어학당’, 아니면 ‘한글학당’(이 경우 한글은 말과 글을 다 포함한다는 정의가 필요하다)이 더 낫지 않을까. 여기가 바로 한국에서 쓰는 언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60세가 다 되어서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콘텐츠학과를 다녔다. 그리고 문학석사(문예창작콘텐츠학 전공)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우리말을 잘하나? 우리글은 제대로 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 ‘우리말 쉬워 어려워?’ ‘우리말은 쉽지, 그런데 잘 쓰기가 어렵지’     


조금씩 여러 외국어를 배워 보았다. 어떤 언어든 개설 과목을 보면 **입문, 초급***, 중급***, 고급***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서 1학년쯤에서 교양과목으로 우리말글을 배우고 나면 끝이다. 더 배우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책상에 우리말사전은 없고 영어사전은 대개 놓여 있다. 내 나라말은 완전히 팽개쳐놓고 외국말만 평생 배운다. 이게 정상일까?     


분명히 한국어로 쓰인 책인데도 어떤 책에는 영어 등 발음을 표시한 단어 사이에 있는 조사나 문장 끝에 연결어미가 있을 뿐 한국어가 거의 없어 차라리 외국어로 쓰는 게 더 나을만한 책도 꽤 있다. 요즈음 평생학습을 장려하는데, 여기에 ‘우리말글 다시 배우기’를 집어넣어야 하지 않을까.        



* 2020년 발간한 『푸른 나라 공화국』 (바른북스) 165~184쪽을 조금 고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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