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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Feb 07. 2023

슬기로운 남북생활, 2+4=1

남과 북은 동포다. 

아니다. 남과 북은 적(?)이다.

이나 저나 남과 북은 어쨌든 이웃이다.     


남과 북은 가깝고도 아주 먼 이웃이다. 육지는 그대로(비록 철조망으로 분단되어 있지만) 이어지고, 바로 강과 바다로 연결된 곳이니까 이웃이다. 왜 우리말에서 가까운 곳을 이웃이라고 이르지 않나?     


그러나 남과 북은 가장 먼(?) 곳이다. 우리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대개 비자 없이도 갈 수 있지만, 북은 비자가 아니라 특별한 승인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 그러니 가장 먼 곳이다. 아주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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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기대』,  준비되지 않은 통일     


SBS기자 안정식이 2020년에 쓴 책이 있다(늘품플러스). 이 책에서 나는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의 생각이 나와 같아 그대로 옮겨 적는다(48쪽).     


‘세계열강들의 힘이 부딪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위치하는 한반도에서 우리가 북한 문제를 다룰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주변 열강들에 비해 국력이 제일 뒤지는 만큼 우리 독자적으로 상황변화를 이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의 상황이 외부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았던 적이 많았던 만큼 이러한 시각을 가지는 것도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피동적 시각은 중대한 오류를 갖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를 주변국과 똑같은 기준에 놓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당사국과 주변국은 역할과 비중이 다르다.  주변국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직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면 주변국들이 반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 문제에 대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주변국이 아닌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은 남북한이 직접 당사자로서의 목소리를 주변에 함께 낼 수 있을 때 결정적으로 발휘된다.’      


다음 페이지에서 그는 ‘진보-보수간 적대적 분열로 인해 여야 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하듯 다른 대북정책을 들고 나옴으로써 남한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고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소진시킨 것이다.’라고 썼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것이 바로 문제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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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남북생활

     

슬기로운 **생활이 유행이다. 그렇다면 우리 남과 북도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생활을 하면 어떨까? 이걸 슬기로운 남북생활이라고 부르자.


남북문제에 대해 진보-보수 진영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걸 보았다. 그런데 남한 사람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질 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종북이라거나 좌빨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있던데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누가 북을 추종하냐, 미친 자들을 빼면?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진보-보수의 차이가 있는가? 영남과 호남의 지역정당들이 서로 한쪽은 보수, 다른 쪽은 진보라고 억지로 구분할 뿐 어디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보수는 뒤집어 수보(守保)인가? 진보는 보진(步進)인가? 그동안 정권을 잡은 자들의 망국적 편가르기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 


2차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이 통일에 이르는 데는 6자회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독, 동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4개 주변국이다. 2개의 분단된 독일은 우리와 여건이 많이 다르긴 하다. 분단 이후에도 그들은 우리와 달리 서로 왕래를 계속하였고, 전쟁도 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 차이는 서독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동방정책(Ostpolitik, 독일어)을 계속해 온 것이다. 그러다가 행운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 당초 전범국으로 4개로 분할되었지만, 3지역은 먼저 서독으로 합쳐지고, 마지막으로 동서독 2개가 통일을 이룬 것이다.     


독일처럼 통일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은 것, 이게 통일의 비결이다. 다음은 작년 6월 20일에 브런치에 써 놓은 글인데 조금 바꾸어 다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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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통일전략은 2+4=1이다 

(바른 역사와 K-지정학 연구 2, 3화 20220620)     


우리는 통일된 나라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적어도 천 년 동안 통일된 나라를 유지해 왔다. 고려가 918년부터 1392년, 조선이 1392년부터 1910년까지다. 그 후 35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이것은 통일이 아니라 분단이었다.           


1948년에 남한과 북한은 각각 정부를 수립하고 1950년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하고 있다. (1953년에 정전(停戰)되었지만 아직도 종전(終戰)이 되지 않아 기술적으로는 전쟁 중이다)           


이를 따져보니 1945년 해방 후 78년이 지났고, 1953년 정전 후 70년이 지났으며, 세계적으로 냉전(冷戰)이 끝났다는 1991년에서 32년이 지났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사에서 백년전쟁보다 긴 기록을 남기려는가.             

그리고 평화의 세기라는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22년이 지났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통일은 이제 그만두고 각각 분단된 나라로 살아야 할까? 남과 북은 아직도 서로 무기를 들고 의심하고 있다. 안보딜레마가 남아있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 유일의 공산왕조를 세습한 집단이면서, 전 세계가 모두 걱정하는 핵무기로 동족과 세계에 위협적 언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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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과 2+4=1          


우리는 독일처럼 두 개의 한국(남한과 북한), 네 개의 주변국(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이 있다. 이를 벌써 30년도 더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려 한다.           


독일은 1945년에 분단되었다가 45년만인 1990년에 통일되었다. 두 개의 독일(서독과 동독)이 있었고 네 개의 이해당사국(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이 있었다. 독일과 관련된 이해당사국으로는 특히 폴란드가 중요했다고 한다.          


우리의 통일 논의에도 흔히 6자 회담 또는 3자 회담이 거론된다. 두 개의 한국은 직접 당사자인데도 여기에서 아무런 주도권이 없고, 네 개 주변국들이 ‘마치 동네사람이 남의 제사상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듯 우리 일에 간섭한다.          


이에 대해 3년전에 나온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라는 부제의『비밀과 역설』(이동기, 아카넷, 2020)에 주목할 내용이 있어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이제 상식적으로 알듯이 독일통일(독일인들은 통일보다도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 부른다)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1월 28일  서독의 콜 총리가「10개조 통일강령」을 발표한다. 그후 통일의 급류가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채 통일로 휩쓸려 들어갔다.          


다음은『비밀과 역설』에서 간추린 것이다.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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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역설』제8장 외교 설득과 유인으로 독일문제를 해결하다


1989년 11월 28일 콜의 통일공세로부터 1990년 11월과 1991년 6월 각각 소련과 폴란드와 우호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독일은 신중과 모험의 줄타기 외교를 이어갔다.(264쪽)          


한반도 주변 열강의 전략과 입장을 상수로 보고 한반도 주민들의 행위 여지와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모든 단견과 전망 부재의 태도는 역사의 하수구로 버릴 때다. 남북은 주변 열강의 한반도 관련 정책이나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이 고정적이라고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전후 유럽에서는 독일문제가 분단으로 해결되었다고 간주되었다. 독일은 패전국이자 전범국으로서 주권의 제약을 많이 받았다. 그런 독일도 ‘자결권’을 내세워 민족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열강에 넘기지 않았다.…독일은 조정과 타협의 통일 외교를 통해 주권 옹호를 더욱 발전시켰다.(26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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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         


우리는 원래 통일된 나라 1이었다. 남에 의해(냉전의 논리) 2가 되었고, 주변국가들(4)의 간섭으로 현재도 2의 상태에 있다. 미국은 독일통일과정에서 ‘4+2 회담’이 아니라 ‘2+4 회담’으로 바꾸자고 말했다니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독일 통일에 협조한 것이다.          


1990년 2월부터 9월까지 독일통일의 외적 조건과 형식을 둘러싼 주요 결정들이 연이어 이루어졌다.…나토와 바르사바의 존재, 유럽공동체와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역할, 동서독 사이의 「기본조약」 및 서독과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 사이의 여러 협정들을 반영해야 했다. 동시에 그것을 ‘6자 회담’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4대 열강이 독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따로 인정했기 때문이지만, ‘4+2 회담’이 아니라 ‘2+4 회담’이라고 불린 이유는 서독과 동독의 결정이 우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4 회담’ 형식은 애초 미국의 제안이었다.(『비밀과 역설』, 249~250쪽)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로 35년간 피해를 입은 나라다. 우리의 분단에는 기본적으로 일본과 미국에 역사적 책임이 있다. 한편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항미원조라며 북한 편을 들은 중국(당시는 중공이다)과 러시아(당시는 소련이다)도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전승국이자 이해관계국으로서 독일을 분할점령하자 하더니 나중에는 독일인의 자결권이 우선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옛날 제국주의의 잔재나 서양이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나.          


독일통일과정에서 동독인들이 자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도저히 자주 의사결정에 대한 인프라가 갖추어 있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남북은 현재의 경계를 그대로 두고 서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통일 후 북한을 제대로 만드는 데에는 남한뿐 아니라 관련 4개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남한은 우선 통일과 긴장 완화로 절감되는 국방예산과 비무장지대(DMZ)를 관광자원으로 바꾼 세계평화공원의 수익으로, 일본은 북한을 식민지배한 배상금으로, 미국·중국·러시아도 역사적 책임에 대한 배상금으로 북한의 경제발전에 참여해야 한다.       


나는 독일통일과정에서 독일이 나토에 남아 있게 하고, 주독 미군이 독일에 잔류하는데 소련(러시아)이 동의했듯이 앞으로 유엔평화유지군 형태로 미군이 상당기간 통일한국에 계속 주둔하는 것도 주변국이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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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한 다른 시각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또는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본과 중국, 일본과 미국 사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본군을 무장해제한다는 우연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언 모리스는『전쟁의 역설』(지식의 날개, 2015)의 한국어판 서문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가슴 아린 표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냉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 ⅶ)          


나는 이 글을 읽고 크게 당황했다. 한반도는 1910년 이전까지 대한제국(조선)이었다가 일제의 강점으로 식민지가 되었지만, 그때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전체를 하나로 통치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연합국의 전후처리에 맡겼다. 1943년 11월 17일 카이로선언에서부터 한반도를 독립국가로 하기로 하였다.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상기하면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을 굳게 다짐한다.”          


이 선언에서부터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되고, 1945년 2월 포츠담선언에서도 이 조항이 재확인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그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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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의 국제관계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역사상 인정된 고유한 판도’로 바꾸어야 한다. 동아시아 역사에 비추어 보면 강역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선언과 헌법 제5조의 규정에 따라 통일한국은 국제평화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세계에 말하자.          


헌법 제5조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통일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 UN이나 국제적 협력요청에 따라 방어 전쟁을 수행한다.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주둔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주둔비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반씩 나누면 어떨까. 미국도 자기의 세계전략에 따른 주둔일 테니 말이다.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호주, 캐나다 등 중견국(middle power country)과 함께 미국(20세기), 영국(19세기) 등이 담당하던 세계경찰(world police)의 역할을 수행하면 어떨까.           


세계경찰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 영, 불, 중, 러), 과거의 전범국(일, 독)이 수행하는데 부담이 있고, 인구 1억명 이상인 대국이 담당하는 것도 부적당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가 수행하는 것이 세계평화와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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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통일한국의 국호는 그대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전에 남북간에 논의되던 고려연방제는 틀렸다. 일본이 강제병합 전까지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이었다. 그러다 1945년 해방 이후 국제연합(UN)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였다. 과거의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바뀐 것이다. 즉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뀐 것이다.           


전에 북한과 논의과정에 등장하는 고려연방제는 남쪽은 대한민국이고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호니까 한(韓)과 조선(朝鮮) 대신 그 이전의 나라였던 고려(高麗)라는 명칭을 쓴 모양이다. 서양어로 고려는 Corea 또는 Korea가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건 대한제국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한 모습이 된다. 그리고 한(韓)은 역사적으로 2천년 전에도 쓰인 명칭이었다.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서독의 헌법(독일기본법)에 의해 통일이 되었고, 동독의 5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한 형태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2021년『푸른 정치와 시민기본소득』123~131쪽에서 고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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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재산 30」은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어느 지공선사(地空善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사람, 가끔은 指空禪師)가 쓰는 글입니다.     


책들 :『푸른 정치와 시민기본소득』(신윤수), 『비밀과 역설』 (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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