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Mar 24. 2023

벌나비는 겨울인데 꽃들만 봄(?)

한돌의 시

강추위가 덮쳐 그대로 겨울나라, 빙하기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다 며칠 봄 더위가 계속되더니 4월 초에 꽃들이 피어버렸다. 꽃들도 제 순서가 있을 텐데, 꽃과 잎새 중 어떤 게 먼저 나오는지까지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와 모르는 꽃들, 산꽃 들꽃 도시꽃 함께 피었다     


꽃 있는데 초록 잎새가 없다니, 예전 청량리 588이나 미아리 텍사스처럼 야한 옷 입은 여인들이 우르르 나와 있다. 하얀꽃이 오색불빛에 물든 핀란드 오로라, 가로등이나 자동차 불빛에 비치는 하얀소복 입은 천년 묵은 여우, 영화에서 본 지옥불 

    

그런데 큰 걱정거리 생겼다. 벌나비가 없어 걱정이다. 벌과 나비들이 이꽃 저꽃 다니며 중매하고 세상 소문도 전하는데 이런 변고가 다 있나. 땅에 뿌리 박힌 나무가 꽃을 냈는데, 명색이 움직인다는 곤충들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요즘 지구에서 팜므파탈(femme fatale)에 무력한 옴므앙포(homme impo)가 바짝 엎드려 있다. 벌나비가 열심히 일할 때까지 봄꽃이 먼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나저나 지구의 미래가 걱정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페시미즘이다

--------------------     


* 「봄꽃 걱정」이란 제목으로 5년 전(2018년) 쓴 글.「벌나비는 겨울인데 꽃들만 봄(?)」으로 제목을 바꾸어 보았다.


** 전보다 10일 이상 빠르게 봄꽃들이 피었다. 이렇다할 봄추위(이걸 ‘꽃샘추위’라고 하던가)도 없었는데, 한낮에 기온이 25도까지 오르니 땅에 뿌리 둔 존재들이 힘든 모양이다.         

                     

(초봄과 매화) 

매거진의 이전글 뿌연 봄날, 딱따구리와 애벌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