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Apr 11. 2023

주요 국가에 대한 사과 요구

미국이 우리 대통령실을 도청했다고 한다. 화내는 게 당연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마땅한데, 우리 대통령실은 그저 그런 모양이다. 그동안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절어 그런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노한다미중(美中사대주의에     


우리 대통령실이 도청되었다고 한다. 만약 적성국이 그랬다면? 아니 반대로 우리 정보기관이 미국 백악관을 도청했다면 어찌 될까? 우리는 약한 나라니까 그냥 바라보아야 하나? 아니 잘못된 일이 분명한데 여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야 하지 않나?


지난 정부에서 중국에 대해 그런다고 당시 야당이 난리 치더니만, 지금은 그 대상이 달라서인지 조용하다. 이른바 선택적 분노인가?     


19세기말에는 우리가 가장 힘없는 나라니 어쩔 수 없었다 치자.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에 6위의 국방력을 가졌는데(한 1년 사이 많이 변해서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나?     


주권국가로서 분연히 따질 것은 따지고, 예정된 미국 방문도 일단 연기하겠다고 해야 하지 않나? 미국 뉴욕타임지 보도로 알았는데, 현재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을 국빈방문하고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중에 가도 늦지 않다.       


전에 읽은 남정현의『분지』와 스테판 에셀의『분노하라』라는 책들이 생각났다.      


『분지』에는 1965년 무렵,  어느 평범한 사람(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가 미국을 향해 있다는 ‘향미산(向美山)’에 숨어 있다)의 분노가 잘 그려져 있고, 『분노하라』에는 레지스탕스 활동과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한 사람의 ‘분노하라! 참여하라!’가 잘 표현되어 있다. 

(짧은 책들이다.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글 끝에 책 표지 사진)        


전부터 생각하고 있는 주요국에 대한 사과요구다. 주권국가로서 전에 당연히 주장했어야 할 사항이거나, 국가는 직접 하기 껄끄럽다면 개인이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푸른 정치와 시민기본소득 (좋은땅, 2021) 94~103쪽을 조금 고쳤다)

-------------------------     


주요 국가에 대한 사과 요구 (일, 중, 미, 영, 불, 러)     


우리는 지금껏 일본에 대해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문제를 따져 왔지만 내가 보기에 더욱 끔찍한 악마적 행위에 대해 전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중국에 대해서도 사대(事大)니 소중화(小中華)니 하며, 이미 역사의 저편에 흘러간 옛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역사왜곡(동북공정)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한국전쟁에서 항미원조라고까지 우기는 중공군 파병으로 발생한 수많은 인명 살상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일본에게는 관동대지진과 1905년 독도편입에 대한 사과, 중국에 대해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한국전쟁 참전과 동북공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 한편 미국,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에 대해서도 근세사의 사건 중 한 개씩만 따져 묻고자 한다.  

------------------------     


1. 일본 관동대지진(1923시 조선인 학살과 독도문제 등     


일본인에게 질문한다. 조상들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인 일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고는 있는지?     


일본의 대지진     


2011년 일본에 큰 지진이 발생해서, 우리가 매우 안타까워했고, 성금으로 약 1천억원을 모아서 전달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감사는커녕 1923년과 비슷하게 ‘한국인이 독약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다음은 1923년 관동대지진에 관련된 신문기사다.     

“지진으로 하루 만에 홀랑 다 타 버린 튼튼하지 못한 수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일본에게 별로 명예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더 큰 일본의 불명예는 9월 2일 있었던 조선인 소동이다. (중략) 얼마나 어리석고 생각 없이 행한 야만의 극치였던가. 지진 당일을 기념하려면, 먼저 이 조선인 소동의 전말을 어떻게 해서든 공표하고 그 과오를 천하에 사죄하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한다. 9월 1일에 대지진이 있었던 사실은 아무도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인 사건에 대해서는 잊기는커녕 그 사실을 묻어 버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곧 수치에 수치를 덧칠하고 있는 격이다.”( 「도쿄 아사히신문」 1924년 8월 28일 자 석간)

-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강상규·김세걸, 방송대출판부, 2013. 188쪽)     


1923년이면 꼭 100년 전이다. 이때도 일본은 사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녕 이게 이웃나라인 일본의 민족성이란 말인가?

-----------------------     


일본의 근린제국주의와 창지개명창씨개명


이참에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를 살펴보자. 일본 제국주의는 다른 서양나라의 제국주의와 많은 점에서 달랐다. 일본은 여러 군데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조선의 일본화’와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추진하였다. 1905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 당시 고종황제의 승인이 없어 무효라는 뜻에서 늑약(勒約)이라고 부른다) 이후부터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주장하며 동화주의정책을 폈다.     


일본과 유럽국가를 비교할 때, 서양의 제국주의는 대상 지역이 인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이었다. 그들은 아직 문명화가 덜 된 곳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야만을 문명화한다는 명분을 대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치(自治)주의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역사, 언어, 인종,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기반이 같은 이웃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처음부터 그곳을 합병하려는 시커먼 욕심을 품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설명한 글을 아래에  인용한다.      


일본은 식민지에 대해 동일한 인종임을 강조하는 인종주의나 아시아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아시아주의를 등장시킨다. 상황이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현실적 차별을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식민지와 제국 일본의 ‘차이’를 강조하는 문명(文明)과 야만(野蠻)의 논리를 사용하고, 반대로 식민지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할 때에는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아시아주의나 인종주의 같은 논의를 끌어들여 내지(內地)와 외지(外地)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강상규·김세걸, 방송대출판부, 2013. 183쪽)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경성 쇼우와 62년)』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일제는 대일항쟁기* 초기에 전국의 땅이름을 대거 바꾸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하였고(약 3만 6천개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말기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으로 이름을 일본어로 바꾸고, 우리말과 글도 말살하려 했던 죄과를 아직도 반성하지 않으니 이웃나라에서 볼 때 참담할 따름이다.     


* ‘대일항쟁기’는 사이버외교사절단(VANK)의 권고대로 ‘일제강점기’를 바꾼 명칭이다.       


그런데 우리는 참 착하거나 아니면 둔한 민족인 모양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나서 조선에 살다가 일본으로 물러갈 때조차 일본인을 대상으로 어떤 폭력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현재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문제를 따지는 것도 이해하지만, 역사 조작을 위한 창지개명,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창씨개명이나 관동대지진시 약 6천명의 조선인이 살해당한 경위를 묻고 사죄를 요구해야 되지 않을까.     

2011년 일본에 큰 지진이 나서 우리가 진심으로 걱정했는데, 이에 대한 감사는커녕 1923년처럼 ‘한국인이 독약을 풀었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말이다.

-------------------------     


소위 식민지근대화론     


지금도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대로 두었으면 형편없었을 나라를 일본이 식민지로 만들어서 교육시키고 공장도 세우고 개화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식민지가 된 대만, 만주와 조선을 비교해 보자.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에 대한 배상으로 일본에 떼어준 땅이고, 만주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일본이 점령하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지역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1870년대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정한론(征韓論)에서 시작해서 계획적으로 침범한 땅이다.      


소위 ‘식민지근대화론’과 관련, 남북한을 비교해 보자. 1945년 광복 당시 조선 전체에서 전력과 산업시설의 거의 대부분이 북한에 있었다. 그렇다면 남한보다 우월한 산업기반을 물려받은 북한이 잘 살아야 하는데,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고, 남한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긴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론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러시아와 싸우던 시기(러일전쟁)인 1905년 2월 22일에 독도를 슬그머니 자기네 땅이라고 몰래 편입하더니, 100년 후 2005년 2월 22일(그해가 마침 ‘한일방문의 해(2005년)’였다), 시마네현이 나서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고, 여태 아이들 배우는 교과서에 자기네 고유영토 어쩌고 하는 건 정말 치졸하다(차라리 중앙정부가 직접 했다면 조금은 이해될지 모르겠다).

-----------------------     


일본의 영토분쟁과 독도문제     


일본의 영토문제를 둘러보자. 독도·다케시마(竹島) 외에 일본은 중국·대만과는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열도(尖閣列島), 러시아와는 북방 4개 섬 문제가 있다.      


일본이 센카쿠열도라고 부르는 섬은 대만과 가까운 곳인데 청일전쟁이 끝나는 1895년에 일본이 오키나와현에 편입시켰다. 이 섬은 태평양전쟁 이후 미국의 관할 아래 있다가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주면서 다시 일본이 지배한다.      


러시아와 분쟁 중인 지시마(千島)열도의 일부인 하보마이제도,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 등 북방 4개 섬은 1855년 러일화친조약으로 일본의 땅으로 인정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내버려 두었다가 소련이 점령한 곳이다.     


그런데 독도는 러일전쟁 와중에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몰래 집어삼키고(영토를 지방관보에 싣는 경우가 있나?)는 이걸 교과서에 싣고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걸 어쩌나.     


결국 독도는 중국·러시아 사이의 영토분쟁에 한국을 슬그머니 끼어 넣어 희석시키려는 정말 치사한 전술이다. 이런 나라와 어떻게 평화를 의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이 책 <7장 독도와 간도>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     


2. 중국 한국전쟁 참전(1950~1953)과 역사조작(동북공정)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 가면서 대륙을 공산화한 중공(중화인민공화국으로 중공(中共)이라고 약칭한다)은 이듬해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우리가 6·25동란이나 6·25전쟁으로 부르지만 국제관례인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표시한다)에 수십만 명을 파병하였다.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로 3년간 전쟁이 계속되고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살상되었다. 이걸 가지고 중국은 당시 미국에 대항해서 조선을 도운 전쟁,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거짓말한다.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항복하기 전까지 미국은 일본과 싸우던 중국을 도우던 우방이었는데 말이다.     


1948년에 북한정부가 세워지고, 1949년에 중공정부가 세워졌다. 이미 압록강변까지 북진한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을 그대로 두면 남북이 통일되고, 중공에 민주주의 바람이 들 것을 염려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이었다고 솔직히 말해야 되지 않을까.     


역사비틀기(동북공정)를 하다 못해 요즘은 만리장성이 한반도에서 시작한다거나, 김치나 한복까지도 다 자기들 것이라고 한다. 정말 요즈음 너무 심하다. 그러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인데 이게 가당키나 한지. 그런데 정작 코로나19가 다른 외국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 하는데, 유독 이것만은 자기네 것이 아니라고 하니, 참.   

-------------------     


3. 미국 : 38도선 설정과 남북분단 원인 제공 (1945     


미국이 20세기 내내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공은 인정한다. 한국전쟁에 수많은 미군이 파병되어 남한을 지켜주고 그 후에 경제발전을 도와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1945년 해방 당시이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부터 조선의 식민지 상태에 유의하고 독립시키겠다고 하더니, 1945년 8월 갑자기 소련과 사이에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분단의 원인이 되었다.      


유럽을 보자.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4개국이 분할 점령했는데, 전범국가인 일본은 그대로 두고, 식민 피해를 입고 있던 나라를 나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에 대해 미국은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으로 남북통일에 미국은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캠프에 가둔 것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미국이 원폭 투하로 당시 재일 한국인 4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는가.

--------------------------     


4. 영국 거문도 점령사건(1885~1887)     


영국은 1885년 4월부터 2년 동안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국경 문제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함대가 남하하는 것을 저지한다며 2년 동안이나 조선의 남쪽 영토인 거문도를 불법 강점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다.

---------------------------     


5. 프랑스 병인양요 때 문화재 강탈(1866)     


프랑스는 군함 7척과 해병대를 보내 강화도를 침공하였다. 강화도 고려궁궐의 장녕전 등 전각에 불을 지르고, 보물·금은괴와 대량의 서적을 약탈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강탈해 간 보물과 서적 등의 반환을 요구한다.

----------------------------     


6.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강제 이주(1937)     


러시아는 1937년 고려인 2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역만리 중앙아시아로 쫓겨간 러시아 한인들은 사막벌판을 옥토로 만들며 카레이츠(고려인)로 우뚝 섰다. 이주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  

---------------------------     


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주권국가라면 직접 나서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시민이라도 나서서 외국에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썼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해야 밝은 미래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전제되어야 이웃끼리 ‘좋은 이웃’ 즉 선린(善隣)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전문)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제5조 제1항)     


여기에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을 담아 나라를 잘 발전시키고 외국과 평화롭게 살자고 제안한다.

---------------------------      


* 「매봉재산 30」은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어느 지공선사(地空善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사람, 가끔은 指空禪師)가 쓰는 글입니다.                    



남정현 『분지』,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선량(選良)을 뽑자 : 중선거구, 국민소환제 도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